단상
<기억은 짧고 인생은 길다>
좀 지났으나, 비교적 최근 일 입니다. 뭐 올해 겪은 일이긴 하니까요~
간만에 친한 형이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표를 줘서 와이프와 눈치보다 칼퇴 후 혜화역 kfc앞에서 도킹했습니다.
‘혜화역 kfc’는 단지 정크푸드 프랜차이즈가 아닌 거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중년층 모두에게 추억의 장소죠. (대학시절 낭만을 즐기기전 모였던 도킹 포인트)
그때의 설렘과 추억을 갖고 하차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계단 한계단 상승해 드디오 발걸음이 닿았는데….
앗, 이 차가운 시선은 뭘까요? 저를 직시하진 않았으나 순간 머리카락은 쭈뼛 섰고, 와이프도 약간은 민망해 하는 느낌. 전 제가 무슨 실수를 해나 생각했습니단, 이내 깨달은 건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문하는 손님중에서도 자리잡은 이들중에서도 말이죠.
연극 보기 전 시장기도 사라졌고,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면서 우리 같이 느끼는 이 멜랑꼴리 기분은 뭐지란 말하지 않아도 전달된 이심전심에 무언의 빵터짐이 곁들여졌지요~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우어 형님의 사상을 접하다 몇자 적는 지금 입니다.
형님께서 왈 “나이가 들수록 지금껏 살아온 인생은 짧게 느껴질 것”이라며, ‘첫사랑’의 강렬한 기억도, 해외여행 처음 갔을때의 순간을 빼곤 거의 잊혀졌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생일‘도 마찬가지인데 어릴 땐 많은 이들이 축하해 줄 것 같고,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선물도 기다려 줄 듯 하고…지만~ 나이 먹을수록 그저 무덤덤 하루고 잊혀진 채 그냥 보통의 날로 보내는 이도 태반일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건의 중요성이나 밀도가 나이 듦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이란 책에 나오네요.
(*저는 사실 머리 올린 금강cc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만~ ㅎㅎ)
끝으로, ”좋았던 일도 좋지 않았던 일도 모두 다 내 인생이다“란 부분은 정말 와닿습니다
여태 읽었던 여러 챕터 중 그래도 오늘만큼은 제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지럽혀는 줬습니다. 아니 격하게 공감됐고 터치해 줬네요.
그렇습니다. 아주 뛰어난 머리는 아니지만 기억력 하나는 타고 났다는 말도 들었던 저 역시 읽고 사색에 잠긴 잠깐의 순간에도 끄덕이고 있는 머리가 거울에 비춰진걸 봤습니다.
들킨 나를 바라보는 나. 그안에 진짜 나. 오늘은 그 나다움을 조금이라도 찾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보는 하루로 보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