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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올림단상

‘문득 건조기를 바라보다…‘

무미건조한 삶에 대한 단상

by 최올림

‘문득 건조기를 바라보다…’


예년과 달리 참사의 영향으로 연말 연시가 국가 애도기간이라 아주 많이 예년보다는 차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유난 떨고 파티하며 보내 던 그 때 그 시절도 있었지만, 그건 다 젊을 때의 호사.


아이 낳고 삼삼오오 뜻 맞아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하고 살피던 이웃사촌들도 이젠 다들 머리 굵어지는 삶 속에서, 각자 주판을 튕긴 채 같은 울타리 아래 살아도 잘 마주치지도 못하는 현실이죠.


사실, 처음엔 슬펐답니다. 이게 뭐지? 한땐 카카오통장도 함께 개설하며 치맥은 당연하거니와 해외는 아니어도 제주도, 강원도 다 함께 누비며 가족 이상으로 가까웠는데 말이죠.


돌이켜보니 이 역시 세월을 보내는 과정이더라구요. 내가 독특해서 그렇다기 보단 제 선배 그리고 그 선배의 선배들 모두 이런 흔적을 남기며 다른 듯 같은 궤적을 이어가며 생을 또 이어가신 걸로 생각됩니다.


곧 지천명을 앞두고 이런저런 잡념의 그물코에 많이 빠지는데 이 또한 이 나이대 동년배들이 모두 겪는 일종의 홍역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주말입니다. 그렇게 잤는데도 낮잠이 그리웠고, 날이 추워 단지내 휘트니스를 갈까 말까 망설이다 잠시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었지요.


국어학원 간 둘째, 평일 잠이 모자르다며 안방으로 사라진 와이프, 점심 같은 아침 후 핫초코 한잔 만들더니 자기 방으로 가는 첫째 그리고 안마의자의 달콤한 릴렉스 후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다 거실에 앉아있는 저.


문득 돌아가는 건조기 속 통을 바라봤습니다. 일주일 내 우리 가족이 입던 옷가지와 우릴 말려주던 수건들 그리고 양말은 물론 속옷까지 한 통 속에서 한통속이 되어 요란하게 돌아갑니다.


일주일의 풍파에 시달리며 묻혀진 먼지들이 여기저기 섞이고 얽히고 움직이더니 그 안의 블랙홀같은 그물망에 신기하게도 이물질들이 쌓여가네요.


약 1시간40분 후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이 깨끗해진 외모로, 박피술을 받은건지 한꺼풀 벗겨낸 피부로 다시금 우릴 맞이할 채비를 하겠지요.


그리고 나선 제 손으로 정렬시키고, 마저 개고 덜 마른 놈들은 열외시켜 또 말리고 이런 통과의례를 거쳐 다음 한 주를 또 살아갈껍니다.


문득 생기 발랄하고, 활기차고, 흥겹고 싶기도 했지만 그저 이렇게 소리없이 청결한 상태로 무미건조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곱씹어 집니다.


습기있게 윤기나게 기름진 상태도 좋지만, 비틀어지진 않을 정도의 마름 나아가 때가 속 빠진 뽀얌 그리고 평양냉면의 무미한 이 맛.


이게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라이프 스타일이지 않을까라고 자문자답하고 있네요.


‘아보하’라고 아주 보통의 하루가 정말 소중하단 사실을 거듭 깨닫는 지금, 그저 따사로운 햇살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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