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짧은 문자였다.한 동안 멍했다.살짝 예감은 했지만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 일정을 취소했다.'칼퇴합니다.맛있는거 먹어요~'
시동을 걸며 전화를 걸었다.
"지금 출발해요.뭐 먹을깡?"일부러 힘찬 목소리를 내봤다.
"어.일단 집에와서 생각해 보자,"
잠을 좀 잤나보다..피곤하고 노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생긴 핫한 고기집을 갔다.회사 송년회 행사인데 일찍 나왔다고 했다.동네 극장에서 서울의 봄 영화를 봤단다.심정도 그런데 영화도 분통이 터졌다고 한다.평일 오후 영화보러온 사람중 4,5십대 아저씨들도 더러 있었다고..그들은 어떤 사정으로 그 시간에 극장에 앉아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남편은 작년에도 한번 승진에서 미끄러졌다.
"승진이 안됐어.미안해.."
그 날은 오늘보다 더 가슴이 먹먹했다.승진이 안된것 보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생각할수록 남편이 안쓰러웠다.30대와 40대를 가정도 뒤로하고 토요일도 반납한채 일해왔고 회사에 대한 열정과 애정도 누구보다 많았던 남편이었다. 새벽4시에 들어와 한시간 눈 붙였다 씻고, 아침 6시에 대기중인 택시타고 출근하던 남편이었다.없는 시간에도 틈만 나면 아이들과 시간보내려고 캠핑 떠나주던 남편이었다.나름 회사에서 보상도 받았다.미국 MBA도 다녀오고 해외 주재원생활도 해보았다.흙수저 출신으로 개미처럼 일만 열심히 하고 후배와 동기들을 살뜰히 챙기고 배려하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일만 하다가 나중에 병들어서 나한테 오기만 해봐!"
한때는 직장생활과 육아,살림,시부모님에게 며느리에 아들 노릇까지 하는게 힘들어 속으로 욕해왔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 남펀이 요즘은 하나둘 아픈데가 생긴다.
손가락.발목,눈,간에 당뇨까지..
깻잎한장을 고기위에 올려놓는데 갑자기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어~~울어?왜 그래?"
"내가 자기 옆에서 보아온 세월이 얼만데.."
"에이 왜 울고 그래~"
"자기가 승진 못해서 우는게 아니야.안쓰러워서 우는거지."
"에이..참.나 원.."
이번엔 남편도 휴지로 눈을 닦는다.
"왜 이렇게 고추가 맵냐."
이 식당을 오래오래 기억할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우리는 눈에 불을켜고 숙소부터 찾았다.
일본을 다녀올까?제주도? 평소에 안가던 서해안을 다녀올까?한참을 숙박앱을 다니며 항공권까지 검색하다가결국 우리가 예약한 곳은 늘 다니던 강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