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용서

by Logos Brunch

큰딸이 필리핀 유치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입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가 염려스러워 선생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한 달간 유치원의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큰 아이 곁을 지켰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싶어서 한 달 후에는 유치원 밖 정원에서 책을 보며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공부하는 중에 창문을 두드리면 얼른 반갑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유치원에서 적응하도록 늘 곁에 있어주었습니다.

유치원이 끝나면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도넛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큰 아이를 업고 다운타운 까지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성애야! 아빠는 성애를 제일 사랑한단다!”

그건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도 똑같이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 생활을 즐거워했고, 공부도 잘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더욱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유학을 갈 때에 저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너희가 해외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아빠는 언제나 너희 편이다.

너희가 바른 삶을 살면 아빠가 기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빠는 여전히 너희의 아빠란다!

힘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아빠에게 제일 먼저 말해라!


이제는 캐나다에서 큰딸은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고

둘째는 박사과정 중에 있지만

여전히 수시로 전화하여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큰딸은 수시로 전화하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다면

둘째는 가끔 전화하여 깊은 고민과 숙제를 이야기합니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대화에 토론도 있고, 응원도 있고, 비전도 나눕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내려놓고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가족,친구,연인)을 붙잡고, 그들이 줄 수도 없는 사랑과 인정과 지원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나의 필요와 욕망을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건 거꾸로 나도 다른 사람(가족,친구,연인)의 필요와 욕망을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돌봄과 섬김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인정과 후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 많은 인간에게 한계가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정과 지원과 필요를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나의 마음을 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나의 편이 되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와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요, 그것이 바로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을 떠나보내려고 노력합니다.


hannah-busing-SQ-ywjhkh6g-unsplash.jpg


작가의 이전글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