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라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계략에 빠져 애굽의 종으로 팔려갑니다.
그는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어 모범적으로 일하여 인정받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준수하게 생긴 요셉을 유혹하다 실패하자 도리어 요셉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서 또다시 어려움을 겪습니다.
많은 설교자는 이 본문을 통하여 유혹을 이긴 요셉을 모델로 제시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음란한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성적 순결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요셉 이야기를 제시합니다(Greidanus. P.577).
독일의 구약학자 폰 라드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는 지혜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남의 여자’에 대한 경고에 매우 가깝다(잠2:16, 5:3, 20, 6:24, 22:14, 23:27-28).
따라서 39장의 유혹 설화는 지혜 문학적인 경고를 하기 위해서 작성된 모범적인 민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von Rad, p.492)
복음주의 설교자들도 이 이야기를 윤리규범의 한 모델로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 이야기를 자신의 윤리 규범에 꿰맞추는 자의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는 지혜문학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의 한 부분으로서 하 나님의 구속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류호준 교수는 요셉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볼 때 도대체 무엇이 이야기의 주제이고 핵심인지 정확하게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수많은 문제와 난관들, 그리고 위기들을 지나게 됩니다. 그는 또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류호준, p.100)
류호준 교수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요셉의 믿음으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칭찬한 요셉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요셉이 믿음으로 보디발의 아내가 시도했던 성적 유혹을 물리친 것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므로 애굽과 모든 사람을 굶어 죽는 상황에서 구원해준 것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한 것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인정한 요셉의 믿음은 그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가져가도록 부탁한 사실입니다(히11:22).
류호준 교수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요셉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탁월한 통찰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셉과 보디발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보았습니다.
창세기 39장은 이야기입니다.
나레이터는 요셉 이야기를 하면서 요셉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나레이터는 야훼(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독특한 이름을 여덟 번이나 사용합니다(창39:2,3,21,23).
이는 애굽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며, 요셉도 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야훼)는 훗날 모세를 통하여 알리신 이름입니다(출3:1-15).
나레이터는 청중에게 의도적으로 요셉과 함께한 하나님은 여호와라고 강조합니다.
필립 얀시는 “여호아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라는 문장으로 39장을 시작하고 끝맺음을 지적하였습니다.(Yancy, p.86)
요셉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셉도 아니고, 보디발이나 그의 아내가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시선을 요셉에게 돌리거나 심지어 보디발이나 그의 아내에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의 리폼드 신학교의 존 커리드 교수는 그의 책 ‘고대 이집트와 구약성경’에서 보디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닙니다(Currid, pp.109-123).
’성경 속의 악녀들’이란 책을 쓴 힉스는 보디발의 아내가 악녀라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그녀를 변호합니다.
보디발은 사랑에 굶주린 아내의 필요를 채우지 않고 오직 먹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창39:6).
목석 같은 남자에게 지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요셉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잘못을 범한 것은 남편 보디발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Higgs, p.84).
남편이 무관심하면, 여성이 외도를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상담 경험이나 혹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작위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민경구 교수는 ‘다시 읽는 창세기’에서 보디발이 내시였을 가능성을 내비치며, 보디발의 아내가 성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추측하므로 역시 보디발의 아내를 은연중 변호합니다(민경구, p.250)
월터 브루그만은 창세기 39장의 핵심은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만사 형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주연 인물이 환난으로부터 쉽게 구원받을 것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제국적인 죽음의 한복판에서 역사하심을 증거합니다.
그것은 값싼 은총이 아닙니다(Brueggemann, p.472).
하나님은 역경의 시기이든 형통의 시기이든 택한 백성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은 후일 수많은 역경을 경험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바빌론에 포로가 되기도 합니다.
환난 속에 있는 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적 도덕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언제나 성장하고 부흥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언제나 형통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반드시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리고 고난을 자기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사용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5절)는 말씀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선교적 비전의 성취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게 편지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7)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3:14)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지, 어떤 환경과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할 때만이 아니라, 실패할 때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모든 민족, 모든 이웃,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축복이 넘쳐 흐르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과 보디발 아내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구속사)에서 인간의 고난과 하나님의 함께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적 비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Brueggemann Walter, Genesis Interpretation A Bible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현대성서주석 창세기),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
Currid D. John, An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고대 이집트와 구약성경), 신득일, 김백석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2020.
Greidanus Sidney, Preaching Christ from Genesis(창세기 프리칭 예수), 강정주, 조호진 옮김, 기독교문서 선교회, 2010.
Higgs Curtis Liz, Bad Girls of the Bible(성경 속의 악녀들), 김창동 옮김, 좋은씨앗, 2002.
von Rad Gerhard, Das erste Buch Mose : Genesis(국제성서주석 창세기), 한국신학연구소, 1988
Yancy Philip & Quinn Brenda, Meet the Bible(필립 얀시의 성경을 만나다), 신순호 옮김, 포이에마, 2010
류호준, 뒤돌아 서서 바라본 하나님, 이레서원, 2006.
민경구, 다시 읽는 창세기, 이레서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