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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26. 2015

다윗의 스캔들

사울의 딸들과 다윗의 악연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음악적 재능을 가진 남자를 좋아합니다. 아이돌 가수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오빠 부대들이 등장합니다. 대학생 시절 MT를 가면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최고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자들은 그 친구 주변에 모여서 밤새 노래하고 노는 데 정말 부러웠습니다.


다윗은 당대 아이돌 가수 같은 명성을 누렸습니다. 사울이 광기가 들었을 때, 신하들은 대뜸 다윗의 음악적 재능을 칭찬하며 그가 수금을 잘 연주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수금 연주는 미친 사울의 광기를 잠재울 정도로 감미로웠습니다. 다윗의 외모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몸짱이었습니다. 용맹하기 이를 데 없어 당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블레셋과 싸움에서 연전연승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오빠 부대들이 등장하여 다윗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 다이델레 리차아렐리(프랑스 국립박물관연합)

다윗 일생에 여성 스캔들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였나 봅니다. 다윗이 여자에게 보이는 집착과 사랑과 증오는 유명하였습니다. 사울왕에게 두 딸 ‘메랍’과 ‘미갈’이 있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왕의 두 딸은 지독한 악연이 있었습니다. 
 

인기가 절정에 오른 다윗을 시기하여 사울은 다윗을 죽일 음모를 꾸몄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사울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보다 블레셋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일 계략을 꾸몄습니다. 사울은 미끼로 큰 딸 메랍을 이용했습니다. 블레셋과 싸워 승리하면 큰 딸 메랍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실 사울은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이미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윗은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하였지만, 사울은 엉뚱하게도 자기 딸을 아드리엘이란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 일은 결국 큰 불행을 야기하는 데 다윗이 말년에 메랍과 아드리엘 사이에 낳은 아들 5명을 한꺼번에 죽여버렸습니다. 메랍이 죄를 범해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전에 사울 왕이 기브온 족속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는 의미로 아들 5명과 메랍과 아드리엘을 한꺼번에 목매달아 죽였습니다. 6,70년 전 일인데 이제와서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하지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칼에 피를 많이 묻혔다고 지적하셨는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둘째 딸 미갈과 얽힌 악연은 더 드라마틱합니다. 사실 미갈은 다윗을 정말 사랑하였습니다. 결혼 후에 사울의 미움을 받아 다윗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미갈은 목숨을 걸고 다윗을 구해주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다윗은 미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다윗의 마음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사족을 달면 성경에서 남녀 간에 사랑 표현을 할 때 99%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미갈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아무튼 사울은 둘째 딸 미갈을 미끼로 다윗을 다시 위험에 빠트리려고 하였습니다. 미갈과 결혼시켜 줄테니 블레셋 사람의 포피(성기) 100개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은 가나안의 풍습과 달리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200개의 포피를 잘라 왔습니다. 그가 미갈을 사랑해서라기 보다 사울 왕의 사위가 되므로 정치적 입지를 든든히 하기 위함이 더 컸던 듯합니다. 

다윗을 탈출시키는 미갈

미갈과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윗은 수배령이 떨어지고 미갈의 도움으로 도망친 후 둘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사울 왕은 미갈을 다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저 멀리 북쪽 끝 도시 라이스에 사는 발디라는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미갈은 두 번째 남편도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아마도 미갈은 매우 사랑스러운 여자였나 봅니다. 미갈은 발디와 살면서 행복하였고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남북을 통일하면서 북쪽 이스라엘에게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미갈을 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갈은 내가 블레셋 사람 포피 100개로 정혼한 여자다. 그러므로 내 여자다."

발디는 졸지에 부인 미갈을 빼앗기고 울면서 따라가며 돌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북쪽 라이스에서 남쪽 예루살렘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는 거리를 그렇게 울면서 따라왔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보았을 것입니다. 

당시 여자 나이 40이면 할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40이 넘은 부인을 데려가서 뭐하려고 그러지!”

그러나 다윗은 인정사정없었습니다. 

다윗이 미갈을 빼앗은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학자들은 미갈이 저주를 받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윗이 미갈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내 여자를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남자의 본능적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윗과 사울 집안의 악연은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이 악연은 결국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지는 사건에도 일정량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화가 카라바죠 (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 1571~1610)가 있습니다. 그는 11살에 고아가 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광기와 폭력과 살인으로 가득하였습다. 그가 그린 성화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림을 부탁한 가톨릭조차 그의 그림을 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종교화가 아니었습니다. 삶의 고뇌와 아픔을 그대로 담아서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란 그림은 그의 마지막 걸작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나폴리로 도망쳤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지만,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수와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의 초점은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의 머리입니다. 다윗의 시선, 옷의 주름 방향, 칼날이 향하고 있는 방향, 빛의 방향은 모두 골리앗의 얼굴을 향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이중 초상입니다. 소년 다윗은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고, 목이 잘린 골리앗의 모습은 말년의 자기 모습입니다. 술과 도박과 폭력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고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렸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없는 말년의 카라바조는 너무나 쓸쓸하였습니다. 그는 38세 되던 해 아무런 유산도, 유언도 없이 열사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시체조차 수습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소년 다윗이나 골리앗은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자신도 어렸을 적에는 수많은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한때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고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모습 속에 골리앗의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이나 골리앗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비추일 때만 가능합니다. 그림 속의 빛은 다윗뿐만 아니라 골리앗에게도 비추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카라바조는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이 들고 있는 칼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시편 35편’을 설교할 때 했던 말을 새겨 넣었다.

“겸손은 오만함을 이긴다."

카라바조는 구원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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