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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7. 2015

인간적 욕심을 보였던 다윗

예수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1, 24)


이 말을 들을 때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이 다 다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만성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과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보는 시각이 다를 것이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해서도 이 말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골리앗 앞에서 선언했던 다윗의 고백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두 칭찬하였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무엘상 17:45, 47)

청동기 문화권에 속했던 이스라엘은 철기 문화를 누리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하였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에는 칼과 창이 없고 오직 왕이었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만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스라엘은 농기구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으니 칼과 창으로 무장한 블레셋을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더욱이 2m가 훨씬 넘는 거인 골리앗이 나와서 싸움을 걸 때 이스라엘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전투를 위하여 훈련받은 장수였고, 그의 온몸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였다.

성경은 그의 무기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키 - 여섯 규빗 한 뼘(대략 3m)

머리 - 놋 투구

몸 - 놋으로 만든 비늘 갑옷 (무게가 놋 오천세겔 - 196kg)

다리 - 놋 각반

무기 - 베틀 채 같은 창 (창 날의 무게만 600세겔 - 23.5kg) 과 칼

아무리 봐도 과장이 심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 과장법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 사용되고 있다.

삼국지에 보면 관우의 키가 9척 장신(270cm)이라고 하며 그가 쓰던 청룡언월도는 82근(50kg)이라고 한다.

삼국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과장법을 썼다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시청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할 때마다 경찰 추산과 주최 측 추산 숫자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부풀리고 싶어하는 쪽이 있고, 줄여서 말하고 싶어하는 쪽이 있다.

골리앗과 싸워 이긴 쪽은 골리앗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과장하여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겠다.


아무튼, 거대한 골리앗의 도전 앞에서 이스라엘이 벌벌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나타난다.

그는 물맷돌 다섯 개만 가지고 나가서 골리앗과 싸워 이긴다.

한마디로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그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만 더 자세히 읽어보면 조금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골리앗의 도전 앞에서 벌벌 떨 때 사울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안한다.

골리앗과 싸워 이기는 자에게 큰 상급을 내리겠다.

1. 많은 재물을 주겠다.

2. 자기 딸을 주어 사위로 삼겠다.

3. 승리하는 자의 집안에 부과되는 세금을 면제하여 주겠다.

그러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싸움터에서 그러한 상급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였다.


그렇다면 다윗은 그 상급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싸움터에 나갔을까?

결코, 아니다.

그는 사울 왕이 제안한 상급에 대하여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자기가 만일 골리앗과 싸워 이기면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인가에 대하여 거듭 확인하였다. (사무엘상 17:26)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싸워 이긴 줄 알았던 다윗에게 물질에 대한 욕심을 보이는 모습은 정말 뜻밖이다.

그런데 그게 인간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였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돈에 대한 욕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니체는 물질 앞에 굴복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는 상품이 거래되는 세속화된 시장에 미치광이를 등장시켜 “우리가 신을 죽였다.”고 선언한다.

절대적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필요로 만든 상대적 가치인 물질을 숭배하는 우리가 신을 죽였다는 것이다.

물질을 최상급의 자리에 앉힌 현대인은 신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목적도 목표도 상실한 허무주의에 함몰되고 말았음을 니체는 지적한다.

니체는 돈 앞에 무릎 꿇은 독일 기독교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제 신은 죽었으니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자유인으로 서라고 권면한다.

사실 니체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 ~ 1900.8.25]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니체와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물질 앞에 굴복한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외면하며 물질 숭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신을 죽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 앞에 솔직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다시 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이 아니겠냐고 역설한다.

키에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 1813.5.5 ~ 1855.11.11]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 인간적인 욕심과 신앙 사이에 무수히 많은 갈등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 된 것은 갈등도 없고, 고민도 없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어서 칭찬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다윗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면서 다윗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윗을 위대한 성군이나 훌륭한 신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을 꼬집어 보면서 오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다윗

그리고 결국에는 바른 선택을 해내고야 마는 다윗

나는 그런 다윗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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