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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9. 2015

가문이냐? 친구냐? 요나단의 갈등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아들이다. 그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아들이었고, 적국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도 용감히 싸워 전과를 거둔 훌륭한 장군이었다. 누가 봐도 요나단은 다음 왕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강력한 라이벌로 다윗이 등장하였다. 나이도 최소한 10년 차이가 나는 어린 소년 다윗은 등장하자마자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사울의 사위가 되고, 이스라엘의 떠오르는 장군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윗이 왕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소문은 사울 집안의 큰 걱정거리요, 위협이었다. 제일 먼저 왕이자 장인이었던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창을 던지기도 하였고, 자기 딸들을 이용하여 함정에 빠트리기도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오히려 그때마다 다윗의 명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급기야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그 위기의 순간에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갈등한다. 가문을 택할 것인가? 친구를 택할 것인가? 역사를 살펴보면, 가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정략결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조선 시대 당쟁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가문을 위하여, 당파를 위하여 목숨 걸고 싸우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가문을 버리고 친구를 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요나단에게 가문을 버리고 친구를 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첫째로 자신이 속한 가족과 가문을 버려야 한다. 두번째로 자신이 왕이 될 권리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요나단의 우정과 의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요나단의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요나단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론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튼 그는 가문보다는 친구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도망자 신세인 친구 다윗을 살려주면서 부탁한다.

"네가 왕이 되면, 내 자손의 생명을 보전해 달라!"

그는 자기 생명을 부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나아가 그의 집안 전체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그는 단지 자손의 생명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우리는 요나단의 결단이 얼마나 크고 중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나는 요나단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어찌보면 사울의 입장이 이해하기 쉽다. 사울왕은 요나단에게 이렇게 욕을 한다.

"이 몹쓸 화냥년의 자식놈아! 그래 네가 이새의 아들놈(다윗)하고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네 망신이 어미 망신이 될 줄 알아라. 이새의 아들놈이 땅 위에 살아 있는 한 너와 네 왕관은 안전하지 못하리라. 당장 그 죽일 놈을 잡아들여라." (공동번역, 사무엘상 20:30-31)


억지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요나단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자기 아버지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의 끝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다. 집안이 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단이 왕이 되어서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할 책임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옮겨진 것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그 직감대로 가문과 가족과 가정을 포기하였다. 그는 다윗에게 눈물로 호소하였다. 

"네가 왕이 되면, 내 자손의 생명을 보전해 달라!"


요나단은 다윗을 인정하고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그리고 자신은 점점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버지 곁을 지킨다. 그는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질 때 아버지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 참으로 비극적 결말이다.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Departing of David and Jonathan), 1642년, 패널에 유채, 73×61㎝,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자는 주공을 군자의 표본으로 삼고 꿈에서라도 보기를 소망하였다. 그가 주공을 그렇게 높이 평가한 것은 13살짜리 조카 성왕(주나라의 2대 왕)을 내쫓고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충성을 다하다 조카가 20살이 되었을 때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 왕권을 넘겨 주나라를 안정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과는 정반대다. 중국 역사에 최고로 훌륭한 군자로 조카의 왕위를 탐내지 않은 주공을 친다.

주공

주공에 비하면 요나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마땅히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가문보다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생각하고 친구를 선택한 요나단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리고 아버지 곁을 생명 다해 지켰던 요나단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오늘 밤 꿈에라도 요나단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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