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Nov 29. 2022

이동의 은혜

필리핀에 처음 선교하러 나갈 때, 원했던 게 아닙니다.

쫓겨났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던 곳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시기였습니다.

청년부 부장을 하셨던 장로님은 어릴 때부터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교직에서 일하셨던 장로님은 예의가 정확하셨습니다.

20대 전도사에게도 늘 ‘전도사님’하면서 깍듯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독 저에게만 반말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이! 부목! 이리 와봐!”

“예” 하면서 순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회 결의로 필리핀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생각이 전혀 없던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선교사 훈련도 받은 적이 없었던 나는 선교사역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선교후원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교회에서 후원하는 1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월 2,30만원으로도 산다니까 아마 넉넉하게 살 거라고 하였습니다.

장로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그때 장로님의 차가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원치도 않던 필리핀 선교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8개월 동안 선교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온 가족을 끌고 말도 통하지 않는 선교지에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집세내고, 자녀 교육비 내고, 매달 나가는 비자 연장비 내고 나니 사역비는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에게 손 벌리는 것을 하지 못했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내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간사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허리띠 졸라매면 되었습니다.

다행히 선교센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동은 타인의 긍휼을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긍휼은 연대를 이루고,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낮고 천한 자리로 이동하신 주님은 긍휼과 연대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성공의 자리, 인기의 자리, 권력의 자리를 빠져나와 계속해서 이동하셨습니다.

성공보다, 인기보다, 권력보다, 돈보다, 긍휼의 사랑과 연대의 협력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셨던 주님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는지 가만 생각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생한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