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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30. 2022

블랙 아트의 선구자, 헨리 오사와 타너

블랙 아트의 선구자 Henry Ossawa Tanner(1859-1937)가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사 벤자민 터커 타너의 큰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 Sarah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로 태어났지만, 북부로 몰래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남부의 흑인들이 자유를 찾아 북부로 탈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미국 감리교회 감독으로서 불의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활동가였습니다.

헨리 오사와 타너의 미들 네임인 ‘오사와’는 그런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헨리가 태어나기 3년 전 캔자스의 Osawatomie에서 노예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건을 기리기 위해 아들의 이름에 그 지명을 넣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헨리는 1879년 펜실베이니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그의 입학은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흑인을 학생으로 받아들이는 예술학교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얼마 전, 그 학교의 교수로 부임한 Thomas Eakins는 인종차별을 반대하여 헨리를 받아들였고, 그를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애킨스 교수는 제자 헨리의 초상화까지 그렸고, 헨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때문에 헨리의 마음은 계속 멍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애틀랜타 지역의 감리교 감독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없던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보라는 배려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파리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본 사업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Rodman Wanamaker는 타나에게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여행을 제안하였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상상으로만 그리지 말고, 현지를 보고 더욱 생생한 그림을 그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가 성경의 땅을 둘러보고 와서 그린 그림이 바로 ‘수태고지’입니다.

헨리 타너는 화가이자 목사로서 ‘나는 붓으로 설교하겠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그럼 헨리 타너가 그린 수태고지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낮고 천한 환경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화가들은 대부분 마리아가 있던 곳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그렸습니다.

나사렛을 방문했던 헨리는 그런 식의 그림은 아무리 신앙으로 좋게 포장해도 사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많은 화가들은 마리아가 왕족이나 귀족이 입던 붉거나 푸른 색의 옷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헨리가 그린 마리아는 소박한 농가의 소박한 농부 옷차림을 한 사춘기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헝클어진 이불에서 빠져나와 침대에 앉은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마리아의 발가락이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 보입니다. (James, p.23)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다른 화가들이 그린 수태고지의 마리아는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이로써 마리아의 경건과 지성과 부지런함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경건과 거룩성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타너의 그림에 마리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그 평범함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Washington Post에 기고한 Scott Lamb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너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에 평화롭게 복종하는 순간을 그렸다. 그러나 이 순간에서조차 마리아는 평범해 보인다. 그것은 우리 역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마리아처럼 따를 수 있다는 의미다.”

타너는 수태고지를 통해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으며, 또 그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타너는 가브리엘을 빛 기둥으로 그렸습니다.

환하지만 눈부시지 않습니다.

마치 설화석고를 통과한 빛처럼 온화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전달하실 때 위압적이거나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에게서 나오는 빛은 방을 가득 채우고 마리아의 얼굴을 채웁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얼굴은 두려움과 믿음, 불안과 복종의 완벽한 조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수한 믿음과 거룩한 표정으로만 받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움과 믿음, 불안과 복종이 복잡미묘하게 섞이지 않을까요?

헨리 타너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의 복잡한 내면 상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짧은 순간이지만, 고민 끝에 하나님의 뜻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마리아의 이 말은 평생 무겁게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좁은 길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나라의 삶에 깊이 잠기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떨림과 갈등과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입니다.

헨리 타너의 수태고지는 우리에게 귀한 설교로 다가옵니다. 


참고도서

James B. Smith, The Magnificent Journey(위대한 여정), 전의우 옮김, 비아토르, 2022. 

Scott Lamb, “The Annunciation by Henry Tanner”, Washington Post, December 21, 2015


https://youtu.be/nSLklk2l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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