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는 마치 씨줄과 날줄이 얽혀 작품을 만들듯 상호작용하였습니다. 듀크 대학에서 신약학 박사과정에 있는 Mark Jeong은 로마서 11장 11-14절 말씀을 통하여 ‘순종하는 이방인과 질투하는 유대인’(Obedient Gentiles and Jealous Jews: A Fresh Interpretation of Paul’s Aim in Romans 11.11-14)이란 논문을 썼습니다. 그는 바울과 동시대에 살았던 필로와 요세푸스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논술했습니다.
로마서 11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마크 정은 질문합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의 구원을 시기하였을까?” 마크 정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신학자들 사이에선 바울의 말에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많은 학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Robert Jewett 교수는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초기 기독교의 선포가 이단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방인들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그들이 왜 질투를 느꼈을지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한 적은 없다.”(Jewett, p.674)
필로와 요세푸스는 유대인이 질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충실함에 끌려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이방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필로가 오경에 대하여 쓴 주석 ‘De Vita Mosis’에서 모세 오경이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방인들이 율법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할 만큼 성장하여 유대인의 안식일과 금식을 인정하였다고 썼습니다.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문’에서 유대 율법이 어떻게 그리스 도시 국가에 스며들어 일부 사람들에게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1) 이러한 이방인의 모방이 있었던 것은 유대인의 엄격한 율법 준수와 헌신 때문이라고 필로와 요세푸스는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 이 주제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모방과 열심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의 렌즈를 통해 율법을 재해석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이 유대 율법을 모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순종을 보였음을 강조하고, 그것이 자기 사역의 목표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5절에서 자기 사역의 목적을 ‘모든 이방인 가운데 믿음의 순종(εἰς ὑπακοὴν πίστεως ἐν πᾶσιν τοῖς ἔθνεσιν)’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5장 18절에서 그는 자신의 사역 목표가 ‘이방인의 순종(ὑπακοὴν ἐθνῶν)’이라고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순종’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정신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믿음도 포함되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이 이끄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바울은 성령이 이끄는 이 새로운 삶의 방식이 율법의 완성(πλήρωμα νόμου, 롬13:10)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로 인해 재조정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한 것에 대한 지침이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N.T. Wright는 로마서 8장 4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에게 율법의 요구가 성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바울)는 계약의 갱신과 포로생활의 끝을 감안했을 때, “토라를 성취하는 것,” “율법을 행하는 것,”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명확하게 신명기적인 비전을 발전시킨다. … 핵심은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어떤 사람이 바울을 이제 더 이상 토라를 지키지 않는 자라고 비난하였다면, 그는 그러한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자기는 메시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토라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토라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메시야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이야말로 사실은 진정으로 토라를 지키는 삶이고, 신명기가 내내 말해 왔던 바로 그것이라고 선언하였을 것입니다.”(Wright, p.1214)
바울의 독특한 공헌은 율법 준수에 대한 기독론적 재해석에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열심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바울은 단순한 율법 준수만으로는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율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식적인 믿음의 삶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바울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보인 믿음의 순종이 율법을 성취하는 반면, 유대인들은 실패했음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새로운 믿음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율법의 완성임을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소망은 단순히 입으로만 믿노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유대인이 그리고 오늘날 현대인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눈에 보이는 율법과 할례를 자랑하며 형식과 외식에 사로잡혔다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순종을 보여주기보다, 말과 혀로만 믿음을 말하고, 병든 교회의 형식과 위선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이방인이 믿음의 순종’을 보여주기를 소망하며 사역했습니다. 그 사역의 열매를 오늘날 우리 가운데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각주 1) 피타고라스가 유대의 교리를 알고 숭앙하고 추종하는 자라고 주장하였고, 여러 헬라 도시에서도 유대의 율법을 모방할 것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Josephus, pp.104~105)
유대의 율법을 선망하는 수많은 인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Josephus, p.188)
참고도서
Mark Jeong’, Obedient Gentiles and Jealous Jews: A Fresh Interpretation of Paul’s Aim in Romans 11.11-14’,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Volume 41, Issue 2, December 2018, Pages 161-176
Jewett Robert, Romans: A Commentary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Wright N.T.,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5.
Josephus, 요세푸스 4, 요세푸스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 김지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 2014
https://youtu.be/WH9GqxVXsVo?si=cmtu_bNmbVHoHH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