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저의 유투브 영상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기존의 틀을 달리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의심 없이 믿고 읽기만 했었고 조금 의구심이 있어도 그냥 넘겼습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다말과 유다의 동침에서(창38:26) 유다는 다말의 행위를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한 내용이 궁금해서 목사님의 이해를 구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성경학자들이나 설교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본문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이런 지저분한 이야기가 있느냐고 불평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가 창녀로 분장해서 시아버지와 동침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니까 현대의 성 윤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자기 며느리를 향하여 “너는 나보다 옳도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유로 유다는 자기 며느리가 자기보다 낫다고 하였을까요?
분명한 것은 유다는 현대의 성윤리로 판단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평가 기준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평가 기준은 성 윤리를 초월할 만한 기준일까요?
우리가 이 본문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절대적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의를 말합니다. 아무리 상대적인 의라고 하지만, 성경은 함부로 누구를 의롭다, 옳다 말하지 않습니다. 다말이 의롭다고 평가받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다말은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1) 그녀가 유다 집안으로 시집왔습니다(박혜원, p.123). 고대 사회에서 여성이 다른 종교의 가정에 시집을 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종교를 믿던 다말이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하고 유다 가정과 결혼한 것은 그 시대의 종교 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혁명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당시에 종교를 바꾸는 여성은 지역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건 마치 여리고 성의 라합이 여호와를 믿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구해주는 것과 비교할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다말과 라합은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좋게 보았고, 또 여호와의 신앙을 선택하여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점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38장을 보면 다말은 유다보다 훨씬 더 여호와 신앙에 투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다말이 유다보다 여호와 신앙에 투철했음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형사취수제도(Levirate law)를 이해해야 합니다. 신명기 25장 5~10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형사취수제도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문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 의무를 다하는 사람을 ‘고엘’이라고 하여 높이 평가했습니다. 때때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속량자, 혹은 구원자 ‘고엘’이라고 불렀습니다(욥19:25)(김이곤, p.423). 그런데 유다는 고의로 이 의무를 외면했습니다. 칼빈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세 가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유다는 다말의 남편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자 그 원인을 다말에게 돌렸습니다(창38:11). 둘째, 유다는 그녀가 재혼하지 못하도록 오랜 세월 붙잡아 두었습니다. 세째, 가장 결정적인데 그는 가문의 혈통을 이어갈 수 있게 한 형사취수제도를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다말을 속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부당하고 잔인한 학대였습니다(Calvin, p.323)
사실 형사취수제도는 고대 사회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제도입니다. 고대 사회는 의료 상황이 좋지 않았고, 전쟁이 끊어지지 않아 남자들이 일찍 죽었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이 사망한 경우 여자는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재산 목록 중 하나였기에 형제가 죽어서 남겨놓은 재산을 동생이 상속받는다는 개념으로 형사취수제도를 실시했습니다(김이곤, p.423). 그러나 성경은 단순히 재산 상속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함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고엘이란 개념이 나왔습니다. 고엘은 한 집안이 멸망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집안의 명맥을 이어주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유다는 고엘의 역할을 외면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공동체를 희생시키고, 그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고 품위 있게 살고 싶어하는 다말의 권리를 짓밟았습니다(Brueggemann, p.464). 유다는 다말이 유다 집안의 혈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창녀로 위장하여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바로 깨달았습니다. 유다는 막내아들 셀라의 안위만 생각했지만, 다말은 유다 집안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 곧 유다 공동체를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유다 집안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는 구속자 집안의 혈통입니다. 유다는 그 혈통을 끊으려 했고, 다말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이름에 똥칠해도 그 구속자의 혈통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유다는 즉각적으로 말합니다.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창38:26).
이것은 개인 윤리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셋째로 유다의 위선적인 도덕관념을 슬쩍 비꼬면서 구약에서 새로운 의의 개념을 소개합니다. 유다는 창녀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금하는 성경의 가르침(호4:14)을 범했으면서, 전혀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한 가문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초지종을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최고의 형벌, 즉 화형을 선고하였습니다(창38:24). 이러한 행동은 도덕군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자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칠 때에 “너희가 조상으로부터 이런 율법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면서 율법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마5:21-48). 월터 브루그만은 창세기 38장이 바로 그와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Brueggemann, pp.464-465). 전통과 관습에 사로잡혀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유다는 공동체의 품위를 훼손하였습니다. 반면에 본문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새로운 의는 약한 자를 포용하는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말은 도덕군자인척하는 유다보다 훨씬 의롭습니다.
성경 역사는 다말이 의롭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줍니다. 다윗은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 하였고(삼하13:1), 압살롬 역시 외동딸의 이름을 다말(삼하14:27)이라 하였습니다. 만일 ‘다말’이란 이름을 수치스럽게 여겼다면, 결코 자기 딸 이름을 다말이라 하지 않았겠지요.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룻4:12).
이는 보아스나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말을 아주 좋게 평가했다는 뜻입니다.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에 첫번째로 오르는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사라도, 리브가도 오르지 못한 자리를 다말이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입니까? 하긴 다말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족보는 끊어졌을 것입니다. 다말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다말은 공동체를 보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명성과 목숨까지도 희생하였습니다(Spangler & Syswerda, p.71). 다말 이야기는 모든 여성에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여성이 많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삶은 바르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와 판단력, 그리고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와 능력을 사용하여 의미 있고 보람있는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김중기, p.46). 성경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의 개념을 가르치고, 동시에 다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1) 창38:14~18에 다말이 가나안 신전 창녀로 분장한 사실은 그녀가 가나안 종교를 잘 아는 가나안 여인이었다는 증거입니다.
Brueggemann Walter, Genesis Interpertation(현대성서주석 창세기), 강성열 옮김,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
Calvin John, Genesis II(칼빈 주석 창세기II), 성서교재연구소, 1982.
Spangler Ann & Syswerda E. Jean, Women of the Bible, Zondervan, 2007.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9.
김중기, 여성에게 일어난 신앙사건, 도서출판 참가치, 2006.
박혜원, ‘공의를 세운 촉진자 리더십, 다말’ 목회와 신학 2008년 8월호, 두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