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6번에 걸쳐 유대전통의 율법 해석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중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 본문을 해석할 때 도덕적으로 해석합니다. 강해로 푸는 마태복음을 쓴 그랜트 오스본이 그 대표적입니다(Osborne, p. 216). 영국의 로이드존스 목사는 ‘죄는 행위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끄는 마음속의 문제’라고 하면서 죄론(罪論)을 풀어갑니다(Lloyd-Jones, p.343).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이 본문을 해석한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남자가 음욕을 품게 되는 원인은 여성의 성적인 유혹 때문이라고 하면서, 여성의 치장할 자유를 억압하였습니다(McKnight, p.87). 크리소스톰은 음욕과 방탕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여인을 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Chrysostom, p.247).
기독교 안에 육체적 쾌락은 악하고, 성관계는 오직 종족 보존을 위하여 제한한다는 가르침이 고대로부터 흘러왔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보다도 성 어거스틴일 것입니다. 성적으로 방종했던 젊은 시절의 탈선을 회심한 후, 어거스틴은 성생활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는 신의 도성에서 ‘모든 성관계에 따르는 수치심’에 대하여 썼습니다. 그는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이 아닌 부부간의 관계도 죄로 보았습니다(Foster, p.115).
그런데 본문에 조금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누구인가요? 남자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음욕을 품고 남자를 보지 않을까요? 야고보 사도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약4:4) 하면서 여성들을 일부러 지칭하여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여성도 얼마든지 음욕을 품고 남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일부러 남자들에게 이 경고를 하셨을까요?
그건 그 시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한 번은 예수님 앞에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히 여인을 붙잡아 돌로 쳐 죽이려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남자는 어디 갔나요? 율법에 따르면, 간음하는 남자와 여자는 모두 죽이도록 하였습니다(레21:10, 신22:20). 그러나 실제로 간음하다 잡히면, 여자만 죽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남자는 결혼을 했더라도 노예와 창녀를 포함해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자신의 남편 외에는 다른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간음에 대한 단죄는 여성에게만 가해진다. “(Smith, p.137)
지금 보면 이상하지만, 유다가 창녀로 위장한 자기 며느리 다말과 잔 일이라든지, 삼손이 유곽을 찾아 다른 여인들과 자는 일이,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다른 아내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밧세바 사건만 지적하였습니다(강영안, p.238).
그건 다른 남자의 아내를 그 남자의 소유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각은 십계명의 제 열 번째 계명에도 나타납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20:17)
집은 그 남자의 소유물 전체를 나타내는 용어이며, 아내는 첫 번째로 언급되는 소유물입니다(Hare, P.94). 이러한 본문까지 있으니 예수님 당시 남자들은 간음에 대하여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칠거지악이라 해서 아내를 내 쫓을 수 있는 조건 일곱 가지가 있었던 것처럼, 유대 바리새파에도 비슷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소유물이었습니다.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개혁한글).”
이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물건 취급하고, 자신들의 죄를 정당시하는 모든 사회 구조적인 악에 정면 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롭게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에선 유대의 전통적인 율법 해석은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강남대 백소영 교수는 아주 강하게 말합니다.
“여자는 성적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러니 여자를 오직 사람으로, 주체로 대하라. 그리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놈들’은 다 지옥에 던져진다. 얼마나 명료한 말씀인가!”(백소영, p.167)
예수님은 간음을 단지 도덕적 차원에서 혹은 교리적 차원에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 문서에서도 성적인 문제는 생각의 문제이고, 생각은 행위의 아버지이므로, 성적인 문제는 곧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건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성을 유혹자로서 회피하지 않고, 그들을 소유물이나 성적 욕망을 해결하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자매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Hare, P.94).
사실 음욕은 헬라어로 에피투미아(ἐπιθυμῆσαι)로서 단순히 성적인 매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성적인 욕구를 의도적으로 키우는 행위입니다(Smith, p.135). C.S.루이스는 음욕을 쾌락에 필요한 도구로 해석하면서 재미난 예를 들었습니다.
“그가 여자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욕망을 채우고 오 분 후에 그가 그녀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담배를 다 피운 다음에도 담뱃갑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Lewis P.123)
리처드 포스터는 ‘음욕은 상대방을 대상으로, 물건으로, 비인격적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음욕이 성을 값싸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를 정죄하셨다고 합니다(Foster, p.113). 달라스 윌라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음욕을 채울 뜻을 품고 - 여자의 보이는 외모를 성적 공상의 수단으로 삼고 -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느니라”(Willard, p.227).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강화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성도 한 인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율법에서 지적한 간음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그 시대 상황에서 남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아마 오늘의 시대 상황이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들이 음욕을 채우기 위하여 온갖 짓을 한다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음욕을 채울 수 있다고 하면서 성 해방을 부르짖는 현대 일부 여성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엄중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을 도구화하고, 소유물로 생각하고, 성적 욕구를 채울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Chrysostom St.John, Homilies of St. John Chrysostom, Archbishop of Constantinople on the Epistle of St.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크리소스톰 로마서 강해), 송종섭 옮김, 지평서원, 1990
Hare R.A.Douglas, Matthew 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 마태복음),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Lewis C.S., The Four Loves(네가지 사랑), 원광연 옮김, 생명의 말씀사, 1997.
Lloyd-Jones Martin, 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산상설교 상) 문창수 옮김, 정경사, 2004
McKnight Scot, The Story of God Bible Commentary Sermon on the Mount(하나님의 이야기 성경주석 산상수훈), 최현만 옮김, 에클레시아북스, 2016
Osborne R. Grant,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Matthew(강해로 푸는 마태복음), 김석근 옮김, 도서출판 디모데, 2015
Smith Bryan James, The Good and Beautiful Life(선하고 아름다운 삶), 전병철 옮김, 생명의 말씀사, 2010.
Willard Dallas, The Divine Conspiracy(하나님의 모략), 윤종석 옮김, 복있는 사람, 2000.
강영안,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 IVP, 2010.
백소영,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3. 페미니스트 성서 해석으로 제안하는 교회 ‘제도’개혁’, IVP, 2018
https://youtu.be/Hgh_1mV_xsU?si=rcOoPdRb5bshEK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