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을 향하여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원수의 나라로 이민 갈 때는 결코 돌아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더라도 멋지고 당당하고 품위 있게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고향이 가까울수록 나오미의 발걸음은 무거워졌습니다. 휘청거리는 나오미를 부축한 룻의 눈길은 불안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낯선 땅에서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베들레헴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의 집에 젓가락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 정도였습니다. 낯선 두 여인을 발견한 동네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오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오미 아닙니까?”
“저를 나오미라 하지 마세요. 저는 마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섰을 때 마셨던 쓰디쓴 물이 바로 마라였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괴롭힘을 받은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질문은 끝이 없었습니다. 남편 엘리멜렉은 어떻게 되었는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함께 온 여자는 누구인지. 일일이 대꾸할 힘도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여인을 위하여 버려진 움막 하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곳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잠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머물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누울 곳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두 사람이 도착한 때는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였습니다. 한없이 눈물짓는 나오미를 바라본 룻은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던 어머니의 수치를 벗겨 드려야겠다. 내 한 몸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시키리라.
여기서 잠깐 많은 목사는 고부갈등을 푸는 열쇠로 나오미와 룻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수학 교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수학문제를 풀어 본 사람이 하는 법입니다. 문제를 하나도 풀어보지 못한 사람이 수학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언제 생깁니까?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벌이는 갈등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편이 되기를 바라고, 며느리는 남편이 자기편이 되기를 바라는 데서 싸움이 시작합니다. 사람이 둘이 만나면 친구가 되고, 셋이 만나면 한 명은 왕따가 되기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와 룻은 갈등을 벌일만한 요인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남자도 없고, 재산도 없습니다. 둘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최악의 조건입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 갈등하고 시기하고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둘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돌봐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갈등이 없는 두 여자를 예로 들어서 수많은 갈등과 아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답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나오미와 룻의 갈등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나오미와 룻을 통해 고부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룻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기는 상속자가 없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이방 여인 룻에게는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즉 룻기의 중심 주제는 헤세드(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코 고부관계 해결이 아닙니다. 룻기에서 고부갈등이나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찾아낸다면, 그건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드는 창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룻은 신데렐라처럼 갑자기 왕자가 나타나서 꽃가마를 탄 것이 아닙니다. 룻은 살기 위해서 온갖 험한 일을 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낮 온도는 섭씨 40도 화씨 104도입니다. 캘리포니아 여름 한낮 온도와 비슷합니다. 그 뜨거운 태양 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떨어진 곡식 한 알 한 알 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녀의 손톱은 흙 먼지를 새까맣게 변하였습니다. 이마와 콧잔등 사이로 흐르는 땀이 비 오듯 하여도 씻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딱 한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 그녀는 분명 하루 세끼도 먹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점심도 거른 채 일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나오미 역시 며느리가 돌아올 때까지 온종일 굶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그런 나오미와 룻에게 임하였습니다.
두 여자는 가만히 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낮고 낮은 자리에서도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몸부림칠 때, 자존심과 체면을 다 내려놓고 삶을 불태울 때, 하나님은 보아스라는 사람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룻이 집에 돌아와 나오미와 손을 잡고 매일매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날 수 있게 하시고, 먹을 양식을 얻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들의 하루는 모두 은혜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룻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hyBC54qlgYU?si=EYnkC3u2O8Ai2oD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