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책은 룻기와 에스더 두 권입니다. 룻기는 이방 여인이 유대에 정착한 이야기이고, 에스더는 유대 여인이 이방에 정착한 이야기입니다. 둘 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토리, 혹은 신데렐라 스토리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룻은 한국 상황에서 고부간의 갈등 문제를 푸는 열쇠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우리가 룻기의 원래 컨텍스트를 잘못 읽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룻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룻의 고향 모압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발람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모압 땅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마지막 유언 설교를 할 때 모압을 언급하였습니다. 모압 사람은 앞으로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느헤미야 역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압의 딸을 며느리로 받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모압과 이스라엘은 철천지원수였습니다. 그건 마치 일본과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일제 식민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일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강제노역으로 끌려가 일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8·15 광복이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가정은 본의 아니게 헤어졌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일본 여자는 사랑을 위해서 남편의 나라 한국을 택한 분들이 있습니다. 딸이 한국으로 가겠다고 결정하자, 일본 부모는 충격을 받고 딸과 인연을 끊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선택해서 한국으로 온 일본인 처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쪽발이 자식’이란 욕을 먹었습니다. 어떤 한국 시댁은 일본인 처를 도저히 받을 수 없다 하여 강제 이혼을 시켰습니다. 느헤미야가 모압 여자와 결혼한 유대인들에게 이혼을 강요한 것과 비슷합니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난 2013년 신문기사를 보니 경주 나자레원에 23명의 일본인 처가 모여 살았습니다. 이들 일본인 할머니들은 일본에 한 번도 간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70년이 지났으니 그분들도 거의 다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압 여인 룻을 생각할 때 일본인 처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훨씬 이해가 쉽습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 가정은 강제 징용되어 모압으로 가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풍요로운 땅 모압으로 이민갔습니다. 원수의 나라로 이민 가는 결정은 쉽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 모두가 말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오직 한가지 목적 잘 살겠다는 욕심으로 떠나는 나오미 가정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잘 적응하기 위하여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들였습니다. 그건 고향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남편과 아들 둘이 다 죽고 여자 세 명이 남았습니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하여 힘들게 일했지만, 모아 놓은 재산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 남자 없이 여자들만 살기는 정말 힘듭니다. 유대 여자 나오미와 며느리 두 명은 온갖 차별과 소외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고민 끝에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따라가기로 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가 판단할 때 앞길이 뻔했습니다.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 땅에서 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일본인 처가 조선 땅에서 사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첫 번째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에 남기로 했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완강했습니다. 그녀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룻1:16)
이건 마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고백과 거의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들을 땐 아름다운 신앙고백이지만, 현실의 룻과 나오미는 이 고백을 하면서 펑펑 울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분명히 심한 차별과 소외와 억압과 폭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 지옥 같은 현실을 예측하고 한 이 고백은 참으로 놀라우면서 동시에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쉽게 암송합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 거의 머털도사 주문처럼 외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선 신앙의 선배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신앙 고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신앙고백은 한결같이 이런 아픈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슬픈 사연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성경의 주인공이니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해피엔딩에만 마음을 쏟으며, 우리도 성공과 승리와 한없는 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룻이 이 고백을 할 땐, 눈곱만큼도 해피엔딩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마지막 한 가닥 끈인 하나님을 붙잡고 눈물을 삼키면서 찢어지는 가슴을 부둥켜 안고 고백하였습니다.
룻의 이야기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9ooHQlfYP58?si=9igf4fHS0i5NI5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