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악기가 바로 첼로라고 한다. 그 악기로 마음 깊숙한 인간애를 연주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파블로 카잘스다. 그는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한 전쟁의 와중 속에서 조국 스페인과 세계가 참된 평화를 누리기를 소망하며 운동했던 음악가이다.
얼마든지 기득권층에 서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결코 안주하는 음악가는 아니었다.
“나라의 부를 만드는 것은 일하는 노동자고 음악 역시 그들이 누려야 할 문화적 재산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어요.
월수입 100달러 미만인 사람들이 1년에 1달러만 내면 볼 수 있는 음악회.
그들이 보낸 박수와 환호는 그동안의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었지요.”
수십 년 전 벌써 노동자들에게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다.
조국 스페인에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스페인 내전에 있을 때는 유럽 각국을 다니면서 호소했다.그러나 아무도 스페인을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 영국 같은 나라는 프랑코 정권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카잘스는 항의의 표시로 영국에서는 연주회를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스페인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한다. 그는 연주회 때마다 제일 마지막으로 스페인 민요 ‘새들의 노래(Song of the birds)’를 연주한다. 그가 태어난 고향 카탈루냐의 새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peace’ ‘peace’하고 노래한다는 것이다.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노래하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칭송받았지만 95세의 고령에도 하루 여섯 시간씩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항상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고, 사람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는 늘 연습이 부족하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도 그의 거장다운 풍모가 간접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인간으로서 음악가로서 진정 위대한 사람이었다.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간의 의무로부터 그를 면제시켜줍니까?
오히려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자유로운 탐구, 바로 그것이 창조력의 핵심입니다."
- 파블로 카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