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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01. 2015

아빠 귀 좀 잡아줄래?

성애야! 주애야!

필리핀 바기오 살 때 시청에서 조금 내려오면 몽골리안 음식점이 있었지. 오마이칸이라고. 기억나니? 딱히 어디 갈만한 음식점이 없어서 우리가 즐겨 갔던 곳이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취향대로 고르고 온갖 채소와 소스를 선택한 후 날달걀 하나 얹으면, 요리사가 철판에 볶아 주었지. 조그만 종이쪽지에 순번을 적어서 접시에 한 장 우리에게 한 장 나누어 주었어. 그러면 우리는 의젓한 폼을 잡고 자리에 앉아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지. 소스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우리는 모든 소스를 조금씩 다 넣었었지. 한국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특별한 외식을 즐겼었지.

언젠가 그 음식점에서 사진 한 장 찍었는데. 어쩜! 아빠 귀를 잡고 있는 사진이구나. 성애는 동생을 본 이후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지. 그래서 매일같이 아빠 귀를 잡고 잠들었지. 그 후 아빠 귀는 성할 날이 없었단다. 네가 얼마나 아빠 귀를 잡아 뜯었는지 기억나니?


주애는 언니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라 하는 따라쟁이였지. 사실 주애는 아빠 귀 잡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언니에게 아빠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경쟁심리였는지. 언니가 귀를 잡으면, 기어코 자기도 잡겠다고 고집을 부렸지. 사진에 보니까 주애가 두 손으로 아빠 귀를 다 잡으려 하는구나. ㅎㅎㅎ 그때는 그리도 욕심부리던 주애가 이제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는 게 너무나 대견하구나. 넉넉지 않은 아빠의 호주머니를 생각하고 늘 손해 보려 하고, 아끼려 하는 네 마음을 아빠는 잘 알고 있단다. 언제 한번 용돈 달라고 해본 적 없는 너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성애야! 너는 다 커서도 언제나 “아빠 귀” 하면서 달려와 잡았지. 이제는 일 년에 한번 얼굴 보기도 힘든 먼 캐나다에 터 잡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뿌듯하단다.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해서 아빠의 손길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 한 편 든든하지만,때로 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도 있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너희가 내 귀를 잡겠다고 난리 칠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고 하던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사무치네.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마른 땅을 적시고 있단다. 이역만리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성애, 주애야! 언제 우리 다시 만나면, 내 귀 좀 잡아주지 않을래?



성애야 사랑한다

이기적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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