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스탠리 밀그램, 프리츠 바우어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게 훨씬 쉽다. (한나 아렌트)
1. 악의 평범성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은 예일대학에서 특이한 심리 실험을 하였다.
실험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처벌의 강도가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며 사람을 모았다.
선생과 학생의 역할을 추첨으로 정한 후, 학생이 외워야 할 단어를 틀릴 때마다 전기쇼크를 주도록 했다.
하지만 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은 모두 연기자였다.
전기 충격도 가짜였다.
학생역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답을 틀리게 말하고, 전기 쇼크에 충격을 받은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도록 하였다.
사실 진짜 실험의 목적은 선생역을 하는 피험자들이 얼마나 권위에 복종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학생이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어야 하는데 과연 복종할까?
학생이 전기충격에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점점 더 강도를 높여 고통을 줄까?
학생 연기자는 전기충격이 강해질수록 표현하는 법을 점점 세게 하였다.
75볼트에서는 신음소리를, 150볼트에서는 “이 테스트를 그만할래요.”하는 소리를
300볼트에서는 말 없는 고성만 지르도록 하였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고통받는 학생을 보면서 더이상 실험을 하지 못하겠다고 실험을 거부하겠는가?
놀랍게도 선생역을 맡은 평범한 대학생들 대부분이 300볼트 충격을 주었고,
무려 63% 실험 참가자는 최고치인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
왜 그들은 이 실험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밀그램이 이런 실험을 하게 된 데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범이다.
그는 법정에서 시종일관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유대인으로서 수용소 생활까지 경험했던 한나 아렌트는 그 재판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하게 보였다.
그는 준법정신이 투철했고 근면 성실한 인간이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와같은 변명을 반복하고 있는가?
오늘날 사회가 구조적인 악을 개선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였다.
2. 악의 가식성
그런데 사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연기에 속았다.
아이히만은 순진하게 명령에 복종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는 26살 나이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하였으며 다음해 독일 나치당의 친위대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그 다음해인 1934년 베를린 친위대 보안국에서 근무하였다.
그의 근무 경력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나치즘에 확고하게 서 있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1941년 나치 지도부가 유대인을 멸절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했을 때 그 임무를 아이히만에게 맡긴 것은 그가 단지 순종을 잘해서라기 보다 그는 열혈 나치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의 상관이었던 하인리히 뮐러는 “우리에게 50명의 아이히만이 있었다면,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독일 패망직후 카톨릭과 옛 친위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였다.
그는 망명지인 아르헨티나에서도 계속하여 나친 잔당과 모임을 가지고 반유대주의운동을 하였다.
그는 옛 친위대 동료이자 출판업자로 활약하던 빌렘 사센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어요. 우리가 1천만 명의 유대인을 모두 죽였다면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가 적을 멸절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난 일반적인 명령수행자가 아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난 그저 얼간이에 불과한 거죠. 난 함께 생각했으며 이상주의자였어요.”(강릉원주대 이동기 교수의 한겨례 신문 논설에서)
악은 너무나 위선적이다.
그는 재판 내내 자신은 단지 명령에 복종한 죄 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만일 히틀러가 자기 가족을 개스실에 보내라 해도 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너무나 순진무구한 사람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기였다.
악은 평범함을 뛰어 넘어 너무나 교활하고 야비하다.
3. 악의 간교함
1950년대 말, 독일 사법부는 나치 범죄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치 전범자들을 색출하기는커녕 ‘나치 사면 및 복권’ 법을 발효하여 이제 과거에 대한 마침표를 찍자는 소리를 높였다.
마치 아베 신조가 “전후 태생 인구 80%를 초과하면서 후손들에게 사과를 계속하게 하는 숙명을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과 같은 논조였다.
일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뒤 나라가 약해지는 데 대해 국민의 실망감이 커졌다.
히틀러가 강한 독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며 극우적 발언을 하자 독일 사람들이 환호했다.
일본은 패망 이후 민주국가로 발전하다가 경제침체로 사기가 떨어진 상태이다.
아베 정권도 강한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극우적 발언을 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이 가고 있는 방향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처럼 다시 한 번 동남아의 패권을 장악해보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감이 확실하다.
그가 온갖 교묘한 수사로 사과하는 척하다, 뒤로 돌아서 자국 백성들에게는 극우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독일의 히틀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현재 독일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범 22명의 역사적인 재판이 있었다.
그 재판을 통해서 12명 교수형, 3명 종신금고, 4명 10년에서 20년 유기형, 3명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나치 시스템에 동조하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은 그저 명령에 복종했을 뿐 아무런 죄가 없다는 식이었다.
더욱이 유대인 학살의 핵심인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실제로 빅토르 카페시우스 박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약사였는데 그는 그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는 역할을 하였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수용소로, 병자와 어린아이, 여자들은 가스실로 보냈다.
그의 펜 끝에 삶과 죽음이 판가름났는데 적어도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죽은 자들의 금니나 돈, 보석을 모아 부를 축적했다.
그는 명령에 순종했을 뿐이라 항변했고, 직접 살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문서에 사인만 했을 뿐이며 자신의 결정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독일 법정은 그에게 살인 방조죄로 9년 감옥형을 선언하였다.
8천 명을 죽이는 결정을 한 그가 겨우 살인방조죄로 9년형을 받다니!!!
독일이 자신들의 죄를 이렇게 가볍게 처리하며 넘어가는 것을 가만두고 볼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헤센(Hessen)의 검사장이었던 프리츠 바우어(Fritz Bauer, 1903~1968)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1933년 나치에 의해 검찰에서 쫓겨나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그는 1936년 덴마크로, 그리고 스웨덴으로 이주했다가 독일 패망 후 돌아왔다.
프리츠 바우어는 적어도 한번은 독일의 총체적 살인조직인 아우슈비츠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이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반성 없이 그냥 지나친다면 다시 또 이런 잘못을 반복하여 저지를 가능성을 그는 보았다.
그는 독일의 계획적인 대량학살, 잔혹 행위, 노동착취를 자행한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963년부터 3년에 걸친 아우슈비츠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그 재판을 계기로 독일에서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독일 사법부는 여전히 비협조적이었으며, 미국은 자신의 맹방으로서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대립하는 독일에 혼란이 없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방해공작을 하였다.
미국은 지금도 같은 논리로 전쟁 범죄에 대하여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을 감싸고 있다.
4. 결론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했던 밀그램은 윤리적, 종교적 배경 아래에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소수의 사람만이 권위에 불복하였던 사실에서 희망을 발견하였다.
우리 주변에 악은 너무나 만연해 있으며,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그 간교함과 가식성은 여전하다.
소망은 깨어있는 지성인, 도덕과 양심이 살아 있는 지성인,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종교적 지성인들이 저들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분연히 저항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오직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
(PS) 지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프리츠 바우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집념의 검사 프리츠 바우어 (The People vs. Fritz Bauer, 2015)’가 상영되었다.
불행히도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빠른 시일 안에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