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예루살렘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믿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러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솔로몬이 7년에 걸쳐 멋진 성전을 짓긴 했지만, 그곳은 이내 우상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유대인 스스로, 제사장 스스로 그곳에 바알과 아세라의 신상을 들여놓고 그것들에게 제사를 드렸다.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시온 산 서쪽에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있다. 그곳에서는 솔로몬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 내내 자기 자녀를 불살라 공양하는 우상숭배가 자행되었다. 힌놈의 골짜기에 몰렉 신을 섬기는 사당이 있는데 도벳(Topheth)이라고 한다. 도벳의 산당에서 얼마나 많은 인신 공양을 했는지 아이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한탄하였다. (예레미야 7:31-34) 힌놈의 골짜기에는 자기 자녀를 산채로 불태워 우상에게 제사 지내려는 부모들이 줄지어 섰다. 광신적인 부모는 자기 자녀를 불사르는 것을 신앙의 표현이라 할지 모르지만, 자녀로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뜨거운 불길과 연기 사이로 아이들의 절규하는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자기 자녀를 태우는 메케한 냄새로 진동하였다. 힌놈의 골짜기는 말 그대로 인간 도살장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면서 그곳은 마치 유황불이 타는 개천 같다고 하였다.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이사야 30:33)
힌놈의 골짜기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솔로몬의 잘못에서 시작되었다. BC957년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만 해도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하자 그의 마음도 세속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략결혼으로 자신이 만든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애굽과 에돔 등 주변 모든 나라 공주를 부인으로 삼았다. 그의 부인은 칠백 명이었고, 첩이 삼백 명이었다. 이 여인들은 날마다 솔로몬에게 성화였는데, 곧 자기들이 믿는 우상을 섬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열왕기상 11:3) 마침내 여인들의 등쌀에 솔로몬은 굴복하였다. 예루살렘을 뺑 돌아가며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열왕기상11:5-8)
열왕기서 저자는 솔로몬의 사치와 향락을 비웃듯이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 은은 귀금속으로 생각하지도 않더라.”(열왕기상 10:21)
그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요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열왕기상 4:22-23)
여기 한 고르는 220ℓ인데 한 말이 18ℓ니 대충 계산해도 30고르는 350말이 넘는 양이다. 그가 이렇게 풍요를 즐길 때 백성들은 엄청난 세금에 허리가 휘었다.
솔로몬의 실정은 무거운 세금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것과 우상숭배를 허용한 것이다. 솔로몬이 세웠던 산당들은 330년이 지난 요시야 왕 시대에야 비로소 제거되었다. 그것도 아주 잠시. 요시야 왕이 산당들을 제거하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다.”(열왕기하 23:13)
요시야 왕은 8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선생들이 있었다. 대제사장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을 위시해서 삼촌뻘 되는 스바냐 선지자가 있었다. 그가 16살 때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고, 왕에 오른 지 12년 그가 20살 되던 해 (BC628)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유다 왕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개혁이었다. 솔로몬 이후 300년 넘게 수많은 왕이 섬겼던 온갖 우상을 제거하는데 무려 6년이 걸렸다.
요시야의 개혁을 살펴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가져다 놓고 그것을 섬겼으며,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사도 드렸다.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한가운데 남창의 집을 세웠다. 여호와의 전 한가운데에서 호모 섹스가 이루어졌으니 정말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왕과 백성,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모두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앞장서서 우상을 숭배한 결과였다. 그들은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 산당에서 자기 자녀를 불사르며 바알과 몰렉신을 섬겼다. (열왕기하 23장) 예수님도 힌놈의 골짜기를 지옥이라고 하셨다. (마5:29)
예레미야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보면서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힌놈의 골짜기 아래에 토기장이의 밭이 있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곳에 가서 토기 굽는 가마터와 굴을 보면서 말하였다. 토기장이의 그릇은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깨어질 것이다. (렘19:11)
죽음의 골짜기, 살육의 피 냄새가 진동하는 이 골짜기, 우상숭배 연기로 가득한 예루살렘은 진정 깨어지고 부서져야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희망의 메시지를 예레미야에게 남겨 주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 밭에 들려서 선포하였다. 이스라엘이 만일 돌이켜 회개하면 새롭게 토기를 빚어낼 것이라고. (예레미야 18:6)
오랜 후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그는 곧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돈을 대제사장 앞에 던져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제사장은 그 돈은 핏값이므로 성전고에 넣을 수 없다 하여 힌놈의 골짜기 아래에 있는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 그곳은 피밭(아겔다마,Aceldama)이라 하여 이름없는 무연고자의 시신을 매장하였다.
시온 산 언덕에 힌놈의 골짜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관망대가 있다. 힌놈의 골짜기는 현재 나무를 심고 잔디를 덮어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피비린내 진동하고 살을 태우는 냄새로 가득하였던 그곳은 이제 조용하다. 나는 그 전망대에서 힌놈의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눈물 흘렸을 예레미야를 잠시 상상해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 언약을 새겨주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예레미야를 그려보았다. 나는 잠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머리 숙여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