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논과 압살롬 그리고 다말
암논(Amnon)은 다윗의 맏아들로서 그의 후계를 이을 왕세자였다. 그의 어머니 아히노암은 다윗의 첫째 부인으로 이스라엘 여자라고 꼭 집어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암논은 순수 이스라엘 혈통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왕세자였다. 암논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부터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함께 겪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친인척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암논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는 지혜가 부족하고 성미 마른 것이 문제였다.
암논의 라이벌은 압살롬이다. 압살롬은 그술(Geshur) 왕의 딸인 마아가의 아들로서 든든한 배경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멋진 사내대장부였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14:25) 압살롬은 잘 생긴 것뿐만 아니라 지혜도 있었고 결단력과 인내심까지 갖춘 사내였다.
여느 왕가에서처럼 다윗 집안에서도 왕자들의 세력 갈등이 있었다. 보통은 동생이 형을 시기하고 공격하는 것인데 다윗의 집안은 반대였다. 큰아들 암논은 동생의 실력과 외모 그리고 든든한 배경에 위협감을 느끼고 동생 압살롬을 짓밟아버릴 계획을 세운다.
압살롬에게는 미모가 뛰어난 여동생 다말이 있었다. 그녀 역시도 지혜롭고 품위있는 아가씨였다. 암논은 다말을 욕보이고 압살롬의 명성에 먹칠할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
성경은 "암논이 다말을 사랑하였다."고 쓰고 있다. 헬라어 구약성경에서는 심지어 암논이 다말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암논이 정말 다말을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하였을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의 사랑이 결코 순수하지 않았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다말을 범하고 싶은 욕망으로 사촌 형 요나답에게 상의한다. 간교하기 짝이 없는 요나답은 암논에게 한가지 꾀를 준다. 아픈 것을 핑계로 다말을 유인하여 강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암논이 다말을 정말 사랑했다면, 정식으로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결혼할 수도 있었다.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암논 :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다말 :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마세요.
왕인 아버지께 요청하면 아버지가 나를 당신에게 주기를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다말의 말은 백번 읽어도 옳은 말이고 지혜로운 말이다. 암논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복 여동생인 사라와 결혼한 것처럼 같은 집안끼리 결혼하는 것은 큰 허물이 되지 않는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이나 야곱이 자매지간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팔레스틴의 아라비아인들에게는 형제자매나 사촌끼리의 결혼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가족의 재산이 낯선 씨족의 집안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민36:5-9) 물론 모세의 율법에 이복 여동생과 동침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본문의 맥락을 읽어보면 암논에게 그러한 죄를 묻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다말이 암논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근친상간에 대한 항의보다는 자신을 이제 부인으로 삼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항변하고 있다.
“오라버니 나를 이제 와서 내쫓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한 것입니다."
암논은 의도적으로 다말을 강간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회피한 체 그녀를 내쫓았다. 성경은 암논이 다말에 대한 호칭이 변하여 가고 있음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처음 사랑한다고 할 때는 “나의 누이여!” 라고 했지만, 강간한 이후에는 바로 “이 계집”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계집을”이라고 표현하지만, 히브리어는 지시대명사 “이것을”(zõ’th)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쓰레기 취급한 것이다.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이것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사무엘하 13:17) 문빗장을 지르라는 말에서 다말이 얼마나 수치심을 느꼈을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출애굽기 21:10을 보면 여자 노예를 데리고 살다가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여도 그녀의 의식주 문제를 책임지며 동거생활도 중단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아리따운 공주인 다말은 이제 하찮은 노예만도 못한 취급을 넘어서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것이다.
다말은 자신의 채색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부짖었다. 손을 머리 위에 얹는 모습은 슬픔의 표현이다. 구약학자 롤랑 드보에 의하면, 다말의 모습은 "이집트의 어떤 부조와 비블로스의 왕 아히람의 석관 위에 새겨진 슬피 우는 여인의 모습"과 같다고 지적한다. 만일 처녀가 강간을 당하고도 울부짖지 않으면, 자신도 뜻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처형당했다.(신22:23-24) 다말의 울부짖음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고, 공동체의 법적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다. 아비는 자신의 딸이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면, 두 가지 요구를 해야 마땅하다. 하나는 결혼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충분한 배상금을 받는 것이다.(출22:16-17, 신22:28-29) 그런데 다윗은 아버지로서 단 한 가지도 시행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반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조치에 대하여 압살롬은 강력하게 불만을 느꼈다. 그는 여동생 다말을 보호하며 복수를 다짐하였다. 2년 후 자신의 땅인 바알하솔(Baal-Hazor)에서 양털 깎는 행사를 하면서 형제들을 초청하였다. 일반적으로 왕세자는 자신을 위하여 호위병 50명을 두었기 때문에 암논을 살해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삼하15:1, 왕상1:5) 마침내 때가 왔다. 양털 깎는 축제의 현장에서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였다. 그의 결정은 단호하였고, 재빨랐다.
나는 이 이야기(삼하13장)를 읽으면서 압살롬보다 암논의 미련함에 가슴이 더 미어터졌다. 그는 왕세자로서 고향 사람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압살롬이 아무리 잘생기고 능력이 있고 배경이 좋다 하여도 그는 이스라엘의 피를 이어받은 정통성을 가진 왕세자였다. 그가 정말 다말을 사랑하였다면, 기꺼이 다말과 결혼하여 경쟁 상대인 압살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최악의 결정만 내렸다. 그의 욕정과 폭력과 무식함을 어찌 아가페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