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이스라엘의 민요 중 '샬롬 하베림(Shalom Chaverim)’이란 노래가 있다. 1)
샬롬은 평화를 뜻하고 하베림은 친구를 뜻한다.
예수님에게도 하베림(친구)들이 있었다.
그냥 동네에서 노는 친구들이 아니라 함께 율법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친구들이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서야 율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각 회당에서 율법 공부하는 모임들이 있었다.
예수님도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율법 선생들과 성경을 토론하셨다. (누가복음 2:46-47)
이러한 랍비식 수업을 통하여 성경을 깨우치는 일에 탁월한 사람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일반적으로는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회당에서 히브리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해석하였다.
그 당시 성경은 양피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로 되어 있기에 일반 사람들은 감히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비쌌다.
오늘날처럼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회당에 나와서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이 성경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회당이 아니면 말씀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우치는 수단은 오직 들음뿐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말씀은 메시아에 관한 본문들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으로 가난과 압제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은 유일한 기쁨이요 희망이었다.
일반인들도 웬만한 사람이면, 메시아 본문쯤은 다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특별히 이사야61:1-7은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본문 중 하나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중략)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중략)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중략)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중략)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사61:1-7)
이 말씀을 읽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마 큰 소리로 '아멘! 아멘!’ 외쳤을 것이다.
고향을 잃고 타국 땅에 포로로 끌려갔던 모든 유대인이 고향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의 보복의 날 이방을 심판하시고 자신들에게는 이방의 모든 것을 빼앗아 누리게 될 것이며
그 날에 영원한 기쁨이 넘치리라는 말에 설움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짐작할 수 있다.
메시아로 소문난 예수님이 고향 땅 나사렛 회당에 들렸을 때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고향 땅에서 배출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일어서셔서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사야서는 워낙 커서 두루마리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었다.
회당은 특별히 자기들이 좋아하는 이사야 본문을 가져왔다.
더욱이 예수님은 메시아로 소문이 자자하였고 자기들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바로 그 메시아이기를 원했다.
예수님도 기꺼이 이사야 본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외우고 있는 바로 그 본문이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서는 그들이 외우고 있던 본문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수님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편집하였는데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본문은 모두 빠져 버렸다.
메시아 본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에 대한 심판과 유대민족에게 베푸시는 엄청난 축복과 상급을 쏙 빼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집중됐다. (눅4:20)
그것은 결코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탈피하여 범세계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메시아를 설교하였다.
예수님의 고향 동네인 나사렛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평가절하 하였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4:22)
그들은 예수님을 그 동네 밖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다.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메시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의 배타성과 편협성은 예수님을 가짜 메시아로 판정하고 죽이려고 하였다. 2)
유대인의 이런 독선적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註)
1) 샬롬 하베림 - 이스라엘 민요 https://www.youtube.com/watch?v=KRZaop5ZoJA
2) 위의 글은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케네스 E. 베일리, 박규태 역, 새물결출판사, 231쪽 이하"에 크게 의존하여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