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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2. 2016

금욕주의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용돈을 받았다. 12,000원. 그때 버스비가 50원이었으니 한 달 왕복 차비로 3,000원이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120원 한 달 3,600원이었다. 주일에는 학교 가지 않으니 차비와 점심값이 조금 남아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대략 6,000원 정도였다. 처음 용돈을 받아든 나는 당장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가던 헌책방은 응암동에 있었다. 대림 시장 가는 길에 헌책방이 서너 군데 있었는데 나는 매일같이 그 책방을 순례하였다. 가끔 친구들과 청계천 헌책방을 갈 때도 있었지만, 응암동 헌책방이 훨씬 정감이 갔다. 사람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 사이에 책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책장에 꽂을 수 없어서 바닥에 그냥 쌓아둔 책들이 수북했지만, 나는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다 꿰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내가 아는 비밀 장소에 숨겨 놓고, 용돈을 받는 날 달려가서 그 책을 사곤 하였다. 처음에는 점심값을 따로 떼어놓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점심값도 책 사는데 사용하였다. 수돗가에서 물로 허기진 배를 채워도 난 책 사는 행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그렇게 모은 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 여동생도 덩달아 용돈을 받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첫째 여동생은 5,000원, 중학교 다니는 둘째 여동생은 3,000원을 받았다. 첫째 여동생은 용돈을 주는 대로 다 써버렸다. 둘째 여동생은 용돈을 가지고 3년 적금을 들었다. 후일 들은 이야기로 첫째는 우리 집이 잘사는 것으로 생각했고, 둘째는 우리 집이 못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둘째는 3년 적금을 통장째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었다. 1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36년 전 이야기인데 어머니는 가끔 그 이야기를 하신다. 둘째가 돈 한 푼 안 쓰고 모아서 가져왔을 때 받았던 감동과 감격을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였다. 용돈은 쓰라고 준 것이다. 그 돈을 쓴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학교생활 하는데 필요한 것도 있고, 교우관계에 쓸 일도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쯤이면, 개척교회 단계를 벗어나 교회 건축도 하고 살림에 여유도 생기기 시작해서 용돈을 준 것인데, 3년 동안 그걸 쓰지 않고 가져온 딸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부모 마음은 저렸을 것이다.


누가 더 훌륭한 자녀일까? 주신 목적과 뜻에 맞게 용돈을 사용한 자녀가 훌륭할까? 아니면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온 자녀가 훌륭할까?


가끔 금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본다. 금식기도는 기본이고, 모든 것에 절제하고 근신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근엄하고 진지하고 경건하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훌륭해 보인다. 기독교 초기부터 고행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막이나 광야에서 오직 기도생활에 전념했다. 먹는 것도 험한 음식뿐이었고, 잠자리나 입는 옷도 모두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인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사람들은 존경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성자라 불렀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마틴 루터 역시 수도원 생활을 하였다. 그는 수도원의 그 어떤 수도자보다 철저하게 고행의 길을 걸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하였다. 한 번 고해하고 돌아서다가 자기 죄가 생각나서 다시 고해를 반복하였다. 그는 자신의 육적인 정념을 없애고자 스스로 채찍을 가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보다 깨끗하고, 보다 거룩하고, 보다 완전하게 살고 싶었다. 매일 같이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노동하며 수도자의 길을 열심히 걸었다.


그런 그가 시편을 읽는 중에 은혜의 복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속 좁고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깨달았을 때 자유함을 느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의 금욕적 고행이 아니라, 나의 헌신과 경건과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버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다.


부모가 가난한 줄 알고, 쓸 거 안 쓰고 3년 내내 적금 한 둘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적은 돈이지만 이 돈이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겠지. 가난한 부모님이 어렵게 용돈을 주었는데 내가 그걸 어찌 사용할 수 있을까? 둘째는 아버지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째는 누리지 못하였다. 학창 시절 둘째의 사진을 보면 언제나 우울한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한 첫째는 언제나 맑고 명랑하였다. 부모님이 주신 돈을 아낌없이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먹을 것 다 먹고, 쓸 것 다 썼다. 부모님이 그러한 첫째를 나무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구김살 없이 자라는 첫째 여동생이 더 예뻤을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마틴 루터는 금욕주의를 버렸다. 물론 기독교 역사에 금욕주의가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경우도 많다. 특별히 기독교가 타락하고 세상과 타협할 때 수도원 운동을 비롯한 금욕 신앙은 많은 크리스천에게 도전이 되었다. 그렇지만 때로 수도원 운동이 교권과 연합하여 계급을 형성하고, 자신은 대단한 신앙인인 것처럼 생각하였다. 금욕의 삶을 산 사람은 성자이고, 그들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저급한 신자인 양 취급하였다.


금욕적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사는 신앙생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난 금욕적인 삶보다 행복한 삶,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Tatev monastery (Arme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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