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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6. 2017

수사학과 설교학의 줄다리기(1)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수사학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조선 시대 선비는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하였다. 공연히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폐족 되기도 했지만,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심지어 문장보다도 글씨체에 관심을 가져서 누구 글씨가 더 아름답고 독특한지를 자랑하였다. 우리나라에 탁월한 웅변가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은 바로 이러한 학풍 때문이다.


반면에 적은 수의 군사로 막강한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는 민주정치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서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민주정치 덕분에 백성 전체가 하나 되어 나라를 방어하고 승리하였다. 그리스에선 귀족이든 평민이든,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민회에서 자유로이 발언하고 변론하였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말 잘 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리스 사람은 논쟁에 능했고,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과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말 잘하는 기술 곧 수사학이야말로 지성 있는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소크라테스(Isokrates)는 기원전 392년 아테네에 수사학 학교를 세웠고, 플라톤은 기원전 387년 철학 아카데미를 세웠다. 이들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궤변과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던 소피스트와 달리 올바른 생각과 말하는 표현법과 태도를 연구하였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체계를 잡았는데, 그의 수사학은 설득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수단과 근원을 세 가지로 말하였다.

“연설을 통해 나타나는 설득 수단에는 세 가지가 있다. 설득 수단은 화자의 성품(ethos)에 근거하든가, 청중이 어떤 감정(pathos)을 갖도록 만드는 데 근거하든가, 또는 논리와 논증(logos)에 근거한다.”


설득을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ethos, 인격과 윤리)를 강조하였다. 소피스트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궤변과 말장난과 왜곡과 거짓말과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와 달리 말하는 사람의 품성과 덕성을 강조하였다. 말하는 사람이 윤리적인지, 인격과 덕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말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은 설득력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말 속에 인품과 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듣는 사람의 유익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설득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파토스(pathos, 감정)다. 파토스는 웅변을 통해서 청중에게 고통, 쾌락, 우정, 증오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감정을 공유할 때 같은 편이라는 의식을 가진다. 감정을 가장 잘 이용한 웅변가가 있다면, 그는 히틀러다. 히틀러는 많은 사람이 혐오하지만, 당시 독일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탁월한 웅변가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대중의 감정을 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알아듣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의 감정을 부추기고 그들을 도취상태로 몰아갔다.


선전은 누구를 향한 것이어야 하는가? 학식 있는 지성인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을 향한 것인가? 선전은 영원히 오직 대중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개개의 선전은 모두 민중적이어야 하며, 그 정신적 수준은 청중 가운데에서 가장 우매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한다. 선전의 기술은 바로 광범위한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


그는 독일 대중의 고민과 아픔을 자극하고 흥분시켜서 불안한 감정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정한 공격 대상인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나 유대인을 증오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연설은 직설적이었다. 모든 문제는 저들(바이마르 정권과 유대인) 때문이다. 연설이 고조되면서 히틀러는 투쟁을 선언하고, 자기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나타내고, 적들을 무찔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미 감정적 공유가 된 대중은 히틀러의 투쟁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히틀러는 적들을 비방하고 공격만 한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품도록 이끌었다. 비록 그가 잘못된 길로 이끌었지만, 당시 독일 대중은 히틀러의 연설 속에 희망과 비전을 보았고 흥분하였다. 히틀러가 탁월한 선동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감정을 읽고, 그 감정을 만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설득을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로고스(logos, 논리와 논증)다. 말이 되지 않는 궤변이나 거짓말과 왜곡은 궁극적으로 설득에 방해만 될 뿐이다. 말에는 질서와 논리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단 논법을 통하여 사람을 설득하였다.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를 먼저 거론하면서 논리를 이끌어 갔다. 1) 사람은 모두 죽는다. 2) 철수는 사람이다. 3) 철수도 죽는다. 간단한 논리 같지만 하나를 인정하면 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하고 왔다 갔다 하면,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무슨 말 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수사학과 기독교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기독교는 그리스 문명 속에서 꽃을 피웠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였으며, 그리스 문화권에서 선교하고 설교하였다. 자연스럽게 기독교 안에 수사학이 자리하였다. 신약 저자들은 자신의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 수사학을 이용한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갈6:2이하, 히2:1-4, 마5장 등)


어거스틴은 신약 저자들이 수사학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다고 내게 참으로 매력을 주는 것은 성경의 인물들과 이방인 웅변가들이나 시인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수사학이 아니다. 내가 탄복하고 놀라워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이 자기 나름의 기교(수사학)를 성경 저자들이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을 정도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수사학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의 말하는 기법인 수사학이 설교에 도움이 되겠는가 고민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가지는 능력과 권위를 더 강조하였다. 신비주의나 경건주의 등 영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배제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으므로, 말씀을 읽기만 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역사하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가톨릭 신학자 슈타이넨(Ulrich von den Steinen)은 수사학 무용론을 주장하였다. “진리는 간청하는 게 아니다. 진리는 관용과 타협을 조화시킨 것도 아니다. 설교자와 회중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추론과 토론을 조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수사학적-민주적 정화과정을 통해 전달되는 게 아니라 역사의 사건과 신앙의 증언으로 성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학문이라고 수사학을 외면해야 할까? 사실 설교는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수사학이 필요하다. 하나님도 말씀하실 때 아무 뜻도 없고 논리도 없이 마구잡이로 하시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관성이 있고, 체계가 있기에 매우 설득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데 수사학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신저인 인간과 아무 상관 없이 전달하지 않는다. 수사학에서만큼 설교학에서도 설교자의 에토스(윤리와 인격)를 요구한다. 설교자의 인성이나 도덕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옳지 못하다. 파토스(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품어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설교에서 그러한 파토스적 요소를 외면할 수는 없다. 로고스(논리와 논증)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탁월한 설교로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얻은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교부나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데 바울만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어거스틴 등 초대교회 대부분의 설교자는 체계적인 수사학을 훈련받은 사람들이었다. 어거스틴은 회심하기 전부터 수사학 교사였으며, 그의 저서인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De Doctrina Christina) 제4권에서 기독교 최초의 수사학 공리를 제시하였다. 그는 수사학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설득시켜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이와같이 수사학과 설교학은 갈등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했다. 수사학과 설교학에 대한 글은 몇 번에 나누어 쓰려고 한다. 다음 글을 기대해 주십시오.

 


참고논문

1. 하병학, "감정의 수사학"  ⌜철학탐구⌟ 36집, 중앙대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15)

2. 손윤락,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수사학과 시민교육"  ⌜한국수사학회 학술대회⌟ 한국수사학회 (2015)

3. 손윤락,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성격과 덕 교육"  ⌜수사학⌟ 17집, 한국수사학회 (2012)

4. 양태종, "고대의 수사학 정의들에 대하여"  ⌜독일학연구⌟ 8집, 동아대학교 독일학연구소 (1992)

5. 신경수, "알렉산더 수사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철학논총⌟ 80집, 새한철학회 (2015)

6. 김종영, "히틀러의 스피치"  ⌜한국수사학회 월례학술발표회⌟ 한국수사학회 (2005)

7. 윤소정, "바울 서신에서 나타나는 수사학의 역사적 배경 고찰"  ⌜신약논단⌟ 14집, 한국신약학회(2007)

8. 정인교, "설교는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가?"  ⌜한국수사학회 월례학술발표회⌟ 한국수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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