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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8. 2017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

한때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세상 모두가 무릎 꿇을 때가 있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하늘처럼 여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좋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세상 모든 권위는 사라졌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니체의 외침이 아니어도 이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 이야기는 수천 년 전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고 위압적인 이야기로 생각하고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세상에는 하나님 말씀보다도 우리 귀를 달콤하게 하는 말들이 너무 많다. 매스 미디어(TV)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끊임없이 속삭인다. 아름답고 예쁜 연예인들이, 호감형 아나운서가, 풍부한 지식과 논리를 갖춘 지식인들이 우리를 설득한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은 세상의 철학과 사고방식이다. 자본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정치적 견해 등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의 메시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정치, 사회, 세상, 돈, 권세, 인간관계, 운동경기, 음식, 등 모두 분야에 자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생각이라 여기겠지만, 그건 세상적 생각이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모두 자기 생각이 있다. 누구를 통해서 들었건, 어디서 배웠건, 무슨 영향을 받았건, 각자 자기 나름의 종교적 컬러가 있다. 교파마다 다르고, 보수와 진보가 다르고, 정치적 견 따라 다르고, 출신 지역마다 다르다. 평신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학자들도 모두 자기 나름의 견해가 있다. 목사마다 설교마다 다 달라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이 정치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이미 정치적 입장을 정해놓은 존재라는 뜻도 된다. 요즘 세상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을 보수 우파로 규정한 사람은 다른 소리를 듣지 않는다. 오직 자기편 소리만 듣는다. 그건 진보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쪽 사람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바른 소리를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수많은 소리와 사상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신학자들이 성경은 편집되었다고 하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이 신은 죽었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소리고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매개체다.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최고의 권위다.

현대는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회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자기 뜻을 따라 살라고 외쳐댄다. 그건 마치 광야에서 사단이 예수님에게 돈 앞에 무릎 꿇고, 세상에 무릎 꿇고 살라고 시험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치적 판단을 내린 사람이다. 진보냐 보수냐 같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결정한 사람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정하라고 촉구하였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24:15)

만일 하나님을 선택하였다면, 그는 이제부터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내 삶의 방식(lifestyle)을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기로 한 사람이다. 말씀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다. 성경은 곧 그리스도인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교인은 종교 행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소통한다고 주장한다. 열심으로 따지면, 헌신과 충성으로 따지면, 구약 유대인을 따를 자가 없다. 그들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다.(미6:7)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조건 종교 행위만 열심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실 리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에 종교인이 너무나 많다.


어떤 교인은 열심히 기도하고 신령한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한다고 주장한다. 기도와 체험은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만나는 인격적 경험의 중요성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말씀 없는 기도와 체험은 이단 되는 지름길이다. 18세기 미국 대부흥의 주역이며 수많은 체험을 한 조나단 에드워즈는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고 권면하였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고 내 소리만 열심히 외치는 기도는 일방통행은 될 수 있어도 소통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영적 체험은 사단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바울이 베뢰아 교인을 칭찬한 데는 까닭이 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행17:11) 그들에게 최고의 권위는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혹시 어느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이 자기 생각과 다르면, 그들은 얼른 성경을 열어 보았다. 세상에서 누군가 그럴듯한 논리로 설득하여도 그들은 성경을 열어 보았다. 친구가 어깨를 감싸며 위로할 때도 그들은 성경을 열어 보았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최종 권위를 두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평생 하나님과 소통하며 살기로 한 사람이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 수 없을진 몰라도 언제나 하나님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일주일이 가도 성경을 열어보지 않는 사람, 고민과 문제가 생겨도 성경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아니다. 한국 교회에 하나님과 소통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았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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