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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7. 2017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약 400년의 간격이 있다. 이 시기에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통일 천하를 이루었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정복 사건이 아니라, 지중해를 중심으로 세계가 하나 됐다는 의미다. 그리스 문화와 언어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스의 뒤를 이어 세계의 종주국이 된 로마는 길을 만들고 법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리스 로마 체제 아래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나라는 세계화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리스 로마 문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와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모시는 유대인은 고민하였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한때 기독교는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당당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는 퇴물이 되었고, 사회의 손가락질 거리가 되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기독교는 인권 반대 세력이요, 골통 보수세력이요, 변화와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낙인 찍혔다. 이런 세상에서 기독교인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2000년 전 유대인이 취한 자세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에 지배를 받았으나 198년 파네아스 전쟁을 계기로 시리아의 셀류커스 왕조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문제는 셀류커스 왕조 8번째 왕 안티오코스 4세 때 터졌다. 안티오코스 4세는 에피파네스(Epiphanes)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에피파니(Epiphany)란 단어와 유사하다. 에피파니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을 찾은 것을 기리는 축일이다. 당시는 예수님 탄생 전이기 때문에 그런 뜻은 아니고, 신의 계시자란 뜻으로 에피파네스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는 제우스 신의 계시자로 헬라 문화를 세상에 널리 전하여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이런 생각은 유대인들에게 최악이었다.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마구 약탈하였다. 그는 제우스 신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용납하지 않았다. 안티오코스는 모든 사람이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하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일본제국이 조선을 집어삼킨 후 조선인도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것과 같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금지하였고, 성전의 제사와 유월절 안식일도 금하였다. 유대인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고, 할례는 폐지하였다. 대신에 제우스를 섬기도록 새로운 규례를 정하였다. 성마다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거기에 제사하도록 하였다. 그리스 문화를 배우도록 예루살렘에 학교를 세우고 체육관을 건설하였다. 유대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 타협


이제 누가 봐도 세상은 바뀌었다. 자그마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리스 문화로 가득하였다. 어느 누가 이 강대한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만, 그리스 문화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그들중 많은 사람은 이방인들과 어울리며 적극적으로 헬라 문화를 받아들였다.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는 에피스파즘(epispsm)이라 불리는 포피 복원술을 시행하였다. 이는 남아있는 포피를 강제로 잡아당기는 수술인데 고통이 극심하고 부작용도 심하였다. 그런데도 헬라인처럼 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고통을 감수하였다. 그들은 안티오코스와 손 잡고 유다의 정체성을 포기하였다.


일제 식민지 아래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고 하던 자들과 다른 바 없는 자들이다. 마카비 1서에서 이들을 민족의 반역자라고 하였다.(마카비1서 1:11-15) 세상과 타협하고 나아가 세상과 동화하려는 자는 어느 시대나 있는 법이다.


2. 도피


도피는 이스라엘 백성이 택하기 쉬운 방법이었다. “그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마카비1서 1:53) 압제와 폭력 앞에 살기 위하여 도망치고 숨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광야로 도망쳤다. 거기서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지만, 서로 돕고 살아가며 만든 공동체는 끈끈한 연대감을 형성했다.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의 권력과 타협하고,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는 타락한 사람들과 구별된 백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썩어질 세상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들의 흔적은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쪽 사막 동굴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쿰란 공동체라고 부른다.


부패한 세상을 떠나 고립된 공동체를 이루려는 노력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막 교부들이나 (봉쇄) 수도원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세속의 욕심을 끊어버리고, 누구보다도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기독교 안에도 세상과 연을 끊고 오직 자기만 의롭다고 주장하며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단체(주로 이단적 단체)들이 있다. 


3. 싸움 - 마카비 1서의 주제


안티오코스의 압제에 종교 자유와 정치적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 사람이 있다. 하스모니안 가문의 유다 마카비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시리아군에 용감하게 대항하여 싸웠다. 타협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일신의 안일을 버리고, 율법을 따라 생명을 바칠 각오를 가졌다. 그들에게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는 전쟁하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그들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안식일에도 싸워야 할까? 그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율법을 잠시 유보하기로 하였다. 게릴라전을 펼친 마카비 군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고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였다.


당시 성전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성소는 황폐해있고 제단은 더럽혀졌으며 성전 문들은 타 버렸고 성전 뜰에는 마치 숲이나 산같이 잡초가 우거져 있었으며 사제들의 방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마카비 1서 4:38) 그들은 머리에 재를 뿌리고 통곡하였다. 164년 전쟁의 와중에도 그들은 신속히 성전을 재봉헌하였다. “모든 백성은 땅에 엎드려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신 하늘을 경배하며 찬양하였다.”(마카비 1서 4:55) 이방의 악한 세력에 타협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끝까지 싸우는 그들의 충성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생각하였다. 마카비 1서는 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싸운 마카비를 영웅으로 그린다. 마카비 1서가 가르치는 교훈은 ‘악한 세력에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 이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마사다 요새에서 생명바쳐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싸움만이 답일까? 기독교 안에는 과격한 사상을 가지고 싸움도 불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4. 순교 - 마카비 2서의 주제


유대인 중에는 비폭력 무저항을 외치며 죽어간 순교자들이 있다. 마카비 2서는 마카비1서와 달리 순교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였다. 마카비 2서 6장에는 90이 넘은 율법학자 엘르아살이 등장한다. 그는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하면서 '자기 생활을 더럽히고 살아가는 것보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마카비 2서 6:19) 무수히 매를 맞고 죽은 엘르아살의 순교는 많은 유대인에게 용기의 모범과 덕행의 본보기가 되었다.


마카비 2서 7장에는 일곱 아들과 함께 순교한 어머니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한 일곱 아들은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혀가 잘리고,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손발이 잘려나갔다. 그래도 생명이 붙어 있자 뜨겁게 달군 솥에 넣어 죽였다. 아들들은 죽어가면서 고문하는 안티오코스 4세에게 부활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지금 사람의 손에 죽어서 하나님께 가서 다시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으니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너는 부활하여 다시 살 희망은 전혀 없다.”(마카비 2서 7:14) 아들 모두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도 역시 처형당했다.


마카비 2서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과 순교를 귀히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었다고 쓴다. 안티오코스 4세는 마카비와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다. 안티오코스는 무섭게 내장이 뒤틀리고 격심한 복통을 겪었으며, 병거를 타고 가다 떨어져 죽었는데 제 자리에 붙어 있는 뼈가 하나도 없었다. 명백히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이다. 마카비 2서도 마카비의 전쟁에 대해서 기록하지만, 그보다 앞서 순교 이야기를 길게 썼다. 그것은 순교자의 희생과 헌신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결과 그들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다. 순교는 기독교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다. 지금도 순교의 피에 대한 강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순교와 희생만이 답일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그리스도인은 오직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방법만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5. 하나님의 역사 - 다니엘서의 주제


다니엘서 7장에서 12장에 나오는 환상은 안티오코스의 학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본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만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다니엘이 보여주는 환상에 강력한 인간 제국이 등장하지만,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권세를 빼앗으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을 말한다.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세상의 변혁은 하나님의 개입으로만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 나라 확립은 초대교회를 통하여 그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도피도 아니요, 싸움도 아니요, 비폭력 무저항의 순교도 아니다. 어찌 보면 상황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나아간다. 세상은 심판받고 저주받을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곳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주인으로 자리하기 위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땅의 주인이시고, 이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땅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다. 답은 신약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우리가 신약의 사상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위의 글은 '신약 세계를 형성한 7가지 사건'(워렌 카터 지음, 박삼종 옮김, 좋은 씨앗, 2017년)의 예루살렘 성전 재봉헌기를 기반으로 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책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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