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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22. 2017

어느 부상병의 한 마디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적군이 쳐들어와 나라의 중요한 요새를 포위하였다. 전세는 매우 불리하였다. 군사의 수나 무기나 모든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패배는 확실하였다. 성을 지키는 장군은 병사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적군은 막강하고 그 수가 엄청납니다.

그러나 이 성이 무너지면 조국도 무너질 것입니다.

승산없는 싸움이지만,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

장군은 지휘봉으로 자기 앞에 선을 그었다.

오늘 조국을 위하여 나와 함께 끝까지 싸울 사람은 이 선을 넘어오십시오.

이 선을 넘어오지 않는 사람은 오늘 밤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오.”

장군의 연설에 감동한 병사들은 하나둘 선을 넘어왔다. 얼마 후 선 너머에는 오직 병사 하나만 남았다. 그는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걸을 수 없었다.


병사는 장군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저는 부상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장군님과 함께 조국을 위하여 싸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 선을 제 뒤에 그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장군의 연설도 감동적이었지만, 부상병의 말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부상당한 병사의 말을 들은 모든 병사는 죽음을 각오하였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병사들은 힘을 모았고 마침내 적군을 물리쳤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상당한 병사가 꼭 사도 바울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주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는 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매도 수없이 맞아 죽을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여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이 끊이지 않았다. 굶고 춥고 헐벗은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바울이 선교하던 소아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가려면 차로 8시간에서 10시간 달려야 했다. 장시간 버스로 여행하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다. 그런 멀고 험한 길을 바울은 걸어서 다녔다. 그의 수고는 절대 작지 않다. 그런 선교여행을 바울은 세 번이나 하였다.


그런데 그의 말년은 너무나 비참하였다. 아들같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바울은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1:15)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4:10)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4:16)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장 위대한 설교자, 가장 위대한 선교사를 딱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함 없이 사도 바울을 선택하겠다. 그는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자비량으로 선교하였다. 그는 따뜻한 가정에서 안식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의 열정과 순수함과 정직과 사랑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그런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버렸다. 하긴 예수님도 제자에게 배신당하였다. 미국 대부흥 운동의 주역이었고 하버드 대학의 학장을 지낸 조나단 에드워즈도 목회하던 교회에서 쫓겨난 후 일 년 만에 죽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이런 일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그는 마치 부상당하여 죽기 직전병사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만 그를 버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도 그를 버린듯하다. 바울만큼 주를 위하여 충성한 사람도 없다.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기로 사역하였다. 그런데 그는 열매를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지금 로마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이 주를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할 때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갚아주시겠지. 풍성한 열매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주시겠지. 물질적 복은 아니더라도 영적인 복은 주시겠지. 그런 마음 하나도 없이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그는 정말 훌륭하다. 그런데 난 그런 분은 왠지 지구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사업 때문에 고민이다. 동생이 하던 사업을 억지로 떠맡았는데 부도 일보 직전이었다. 상황이 그러한 데도 권사님을 빚을 내어 헌금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는 데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신 것은 그 건강함으로 먼저 자신이 행복하고, 그 행복함으로 주를 위하여 충성하라는 뜻이다. 건강을 해쳐가면서 충성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물질도 마찬가지다. 물질로 얻는 만족과 평안을 먼저 누리고, 그 감사함으로 주를 위하여 헌금하라고 하신다. 부도나고 죽을 지경인데 빚을 내어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충성했으니 만 배로 갚아 달라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주신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주면 주는 대로 다 하나님께 드리고 심지어 빚내서 드린다면, 언제 자신을 위하여 쓸 것인가? 얼마를 주어야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행복을 원하신다.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한다. 그 행복함 가운데 감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바울은 일생 주를 위하여 생명 내놓고 충성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 죽음을 앞에 둔 바울은 하나님을 원망하였을까? 그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쓰러져서 우리를 향하여 한마디 한다.

“하나님! 감사의 선을 제 뒤에 그어 주십시오.

제가 한평생 주를 위하여 충성하였지만, 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제 부상당하여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생 어떤 형편에든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구약 선지자 하박국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나 거두는 자가 다 같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심기만 하였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열매를 거두겠지요.

열매는 거두지 못하고 심기만 하던 나 바울을 외면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셨음을 믿습니다.

공의로우신 주께서 판단하시고 나에게 면류관을 주시겠지요.

나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나는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장군과 함께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여러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승리하며 사십시오.

우리 대장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신다면 여러분은 분명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이다. 열매를 풍성히 거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열매나 결과나 성과만 보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과 보다 삶의 태도와 자세를 보신다. 하나님 편에 섰는가? 하나님 편에 서서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주님! 귀한 목회를 맡겨주셨는데 늘 부족함만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을 베풀어 나의 뒤에 감사와 기쁨과 열정과 헌신의 선을 그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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