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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22. 2017

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꿇지 않았나?

에스더 이야기 4

인간은 언제나 고민한다. 굴복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히틀러가 최고 권력을 가졌을 때 교회는 알아서 굴복하였다. 교황청도 히틀러에게 반대하는 조직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1933년 3월 28일 독일 주교들은 일제히 히틀러를 지지하였다. 놀라운 것은 나치가 그때부터 교회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였다. 우습게 본 것이다. 나치는 신부들의 가택을 수색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가톨릭 단체들을 해산하고 가톨릭 출신 관료들을 쫓아버렸다.


독일의 루터교회는 히틀러를 역사의 구세주이며 하나님께서 독일에 보낸 메시아로 보았다. 독일 루터교회는 단 한 번도 국가에 반기들 든 적이 없다. 루터 이후로 그들은 언제나 국가에 헌신했고 스스로 국가 공무원처럼 생각했다. 교회에서 목사들은 나치 제복을 입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영광이 둘린 밤

오직 총통은 꾸준하게 전투하며

밤낮으로 독일을 지키시고

언제나 우리를 돌보신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권력 앞에 무릎 꿇은 기독교와 지도자를 히틀러는 경멸하고 조롱하였다.


강력한 전제국가 페르시아에 사는 유대인들도 나치 독일 하의 그리스도인과 같은 고민을 하였다. 살기 위하여 굴복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인간은 알고 보면 연약한 존재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은 말한다.

“약한 자가 살기 위해서 강한 자에게 못할 일은 없습니다.

삶이 있어야 대의도 있고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랍비 코츠커는 사람은 머리를 높이 들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양순해야 하고 잔잔한 물보다 더 조용해야 하며 베어 놓은 풀보다 더욱 부드러워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사람이란 실존 자체가 반항이어야 한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을까? 동료들은 모르드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동료들만큼이나 나도 모르드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무릎을 꿇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인가? 아니다. 성경은 오히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에스더 2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왕을 암살하는 음모를 알아차린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알린다.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음모를 막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하수에로 왕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 모르드개가 아무런 사심 없이 충성심 하나만으로 고자질하였을까? 아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역대 페르시아 왕 중에 가장 나쁜 왕이었다. 오히려 왕비 중 한 명이 사촌 에스더였기 때문에 고자질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합리적인 해석은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음모를 밝히므로 왕의 칭찬과 상급을 바랐기 때문이다. 후일 하만을 대신하여 페르시아의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을 보면, 그는 권력 지향적 인물이다. 그는 분명 아하수에로 앞에 무릎 꿇었을 것이다.

악한 왕 아하수에로에게는 무릎을 꿇었던 모르드개가 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하만에게는 왜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추측한다.


1. 개인적으로 섭섭함 때문이었을까?

2장 마지막 부분에 왕의 암살 음모를 밝힌 사람은 모르드개다. 당연히 큰 상급과 직책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르드개는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하만이 큰 상을 받아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낙하산 인사를 두고 아마도 페르시아 정계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을 것이다.


에스더 1장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 밑에 여러 신하가 있다.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 (에1:3)

왕이 규례와 법률에 대한 자문을 구할 때 묻는 현자들 (에1:13)

페르시아의 일곱 지방관 가르스나, 세달, 아드마다, 다시스, 메레스, 마르스나, 므무간 (에1:14)

왕의 내시 헤개와 사아스가스(에2:3,14)

아하수에로의 신하 중에 하만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전에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경로로 모든 대신 위에 앉게 되었는지 설명이 전혀 없다.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에도 하만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서 백성의 문제를 심의하고 왕에게 전달하는 직책을 가진 관료로 추정된다.(에2:21) 그가 궁에 들어가 왕비 에스더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을 보면 그가 관료임을 알 수 있다. (에2:22) 혹시 모르드개는 자기가 받아야 할 상과 직급을 근본도 모르는 하만이 대신 받은 것에 섭섭하지 않았을까? 인간적인 섭섭함 때문에 하만에게는 머리 숙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죽음을 각오하면서 무릎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2. 민족적인 감정 때문이었을까?

하만이 갑자기 등용되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하만이 누구야?'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래” 모르드개도 그 사실을 알았다.


전에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을 때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은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주었다. 그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베냐민 지파에 주어졌던 왕권을 다윗에게 빼앗겼다. 베냐민 지파 사람에게 아각은 잊을 수 없는 철천지원수였다.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베냐민 지파인 모르드개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섭섭함에다 민족적인 악감정까지 겹쳐서 모르드개가 절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추론이고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울 왕과 아각 사이의 갈등은 무려 500년 전 사건이다. 하만이 정말 아각의 후손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하만에게 아각의 피는 얼마큼 섞여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1517년은 중종 12년이다. 중종반정 후 조광조는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작업을 하면서 공신세력과 갈등을 벌인다. 남곤, 심정을 주축으로 한 공신세력의 모함으로 조광조와 그의 일파 70명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500년이 흐른 지금 조씨 집안과 남 씨나 심 씨 집안이 원수일까? 서로 상종도 하지 않고 만나기만 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00년 전 원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모르드개가 단순히 민족적 악감정 때문에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서 죽음을 자초한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일단 넘어가자. 1)


3. 우상숭배 때문이었을까?

동료들이 모르드개에게 무릎 꿇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유대인이라고 하였다. 유대인이 무릎 꿇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경우다. 우상숭배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무릎 꿇지 않은 이유도 우상숭배였다.


어떤 성경학자는 하만이 가슴에 우상을 달고 다녔기 때문에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지만, 그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유대 구약학자인 요람 하조니의 설명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만은 자신을 우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왕의 반지를 받은 사람으로 모든 대신 위에 있었다. (에3:10) 보통 우상 숭배하면 흙이나 금속, 나무, 돌 등으로 신을 상징하여 만든 조형물을 생각한다. 그런데 고대 세계에는 최고의 권력자들이 자신을 신 혹은 신의 대리자로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애굽의 바로도 자신을 신으로 칭하였다. 오늘날에도 절대 권력자들이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은 이유로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혔다면, 틀림없이 하만이 자신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무릎 꿇지 않았을 것이다.


4. 정치적인 이유였을까?

이 부분은 전적으로 요람 하조니의 책 ‘하나님과 정치’에 의존한다. 그리스와 전쟁을 하기 전 아하수에로 왕은 신하들을 존중하고 신뢰하였으며 그들의 조언을 귀 기울였다.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는 과정에도 일곱 지방관 중 제일 계급이 낮은 므무간의 발언을 들어주었다. (에1:21) 새로운 왕비 에스더를 세우기 위한 정책도 측근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에2:2) 이러한 예를 통하여 하만이 등장하기 전에는 왕에게 조언할 수 있었던 신하들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국의 통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나라의 왕도 다양한 주제(전쟁, 외교, 재정, 세금, 종교, 교육, 법, 내치, 정권 유지, 지방 운영, 왕가 재산 관리 등)에 관해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규례와 법도를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을 잘 집행하고 다스리는 신하들도 필요하다. 실제로 1, 2장에 보면 아하수에로의 보좌관과 신하들 18명의 이름을 나열한다. 법과 정책에 정통한 보좌관 7명과 왕궁 행정에 능한 관료 7명, 보안 관료 2명, 후궁 담당자 2명 등의 이름이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며 때로 견제하며 나라를 이끌어 갔다. 비록 왕은 악하고 무능하다 할지라도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만 갖추어져 있다면 정치가 완전히 시궁창에 빠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제 하만이 등장하므로 모든 언로와 견제와 경쟁과 충언이 사라지게 되었다.  비선 실세 같은 하만 한 사람에 의하여 국정이 농단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왕은 주색잡기에 몰두하기 위하여 간신 하만을 앞세웠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파탄 난다.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에3:15)


모르드개가 정말 충신이었다면, 왕이 바르게 정치하지 못함을 간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왕이 내린 명령(주색잡기에 빠지기 위하여 하만을 등용한 정책)은 부당하다. 나는 이 명령에 머리를 숙일 수 없다. 사람이 고개를 들고 서서 살도록 한 것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함이다. 살기 위하여 비굴한 모습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면 단연코 저항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모르드개의 저항은 인간 실존의 저항은 아니었을까?


각주

1) 아말렉의 후손 아각과 베냐민 지파의 후손 모르드개의 문제는 다음 글 "아말렉의 정체"에서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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