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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28. 2017

아말렉의 정체

에스더 이야기 5

아말렉(Amalek)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미스터리(Mystery)한 민족 중 하나이다. 성경 이곳저곳에 아말렉이 등장하지만, 그 정체를 규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들이 거주했던 곳은 어디인지, 그들이 섬기던 신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말렉(עֲמָלֵק)이란 어원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특별히 에스더에 나오는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 이는 해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아각은 사무엘상 15장에 의하면 아말렉 왕이다. 그렇다면 하만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아각을 마치 한 민족의 조상인 양 소개하는 데 이는 아각(의 후손 하만)과 사울(의 후손 모르드개)의 대결구도를 다시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구약 주석가들 사이에서는 하만이 혈통으로 아각의 후손인지 아니면 은유로 이해할지에 관해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잠깐 이야기하였지만, 아각과 하만은 500년의 간격이 있다. 따라서 혈통으로 아각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당시 족보를 정확히 기록하여 전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말렉이나 하만에 관한 자료는 성경 외에 그 어떤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말렉은 철저히 성경을 근거로 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아말렉은 창세기 14:7절에 처음 등장한다.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이 본문은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벌어진 국제전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는 창세기 36:12절에서 아말렉을 에서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는 부분과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창세기 14:7은 에서가 출생하기 전에 이미 아말렉족속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구약학자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 1909-2000)은 ‘아말렉족속의 온 땅을 쳤다’는 표현이 어색하므로 “아말렉족속의 모든 족장”으로 읽는 게 좋다고 하였다. 성경은 그돌라오멜이 공격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족속을 치고 어느 족속을 치고 하는 데 유독 아말렉만 땅을 쳤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에서가 출생하기 전 이미 아말렉족속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말렉이 신비로운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거주하는 땅도 어딘지 분명치 않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출애굽기 17장에 처음 나온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출17:8)

르비딤은 시내 산과 신 광야 사이에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아라비아 사막 서쪽 끝에 위치한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일부 학자는 아말렉족속을 사막의 유목민족으로 해석한다. 사막의 유목민족은 그 명멸(明滅)이 잦아서 민족의 혈통이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튼, 그들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가로막고 이스라엘의 제일 약한 뒤를 공격하였다. 이에 분노한 모세는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삼아 아말렉을 공격하고 자신은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첫 전투에 승리한 후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그들이 존재했음을)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다짐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셨다. (출17:14,16) 하나님께서는 왜 아말렉을 이토록 미워하셨을까?


신명기 25장에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밝혔다. 이스라엘이 피곤할 때에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신25:18) 사실 출애굽 하여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에 이스라엘의 앞길을 가로막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은 한 둘이 아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동원하여 온갖 악한 짓을 도모하였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였다. 모압뿐만 아니라 암몬과 에돔도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아말렉만 미워하여 그들과 끝까지 싸워서 역사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여기 아말렉 족속은 아라비아 서쪽 끝에 위치한 것으로 나온다.


민수기 13장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어 정탐 결과를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아말렉은 가나안 땅 남쪽에 거주한다고 보고하였다.(민13:29) 아라비아 서쪽 끝에 있던 아말렉족속이 민수기에는 가나안 땅 남쪽에 있다. 아말렉 족속은 어디에 살았을까? 가나안 남쪽 네게브인가? 아라비아 사막 서쪽 끝인가?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 족속은 보다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사울 왕이 아말렉을 진멸하기 위하여 싸울 때 아말렉이 퍼져 있는 곳을 설명한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삼상15:7)

여기 하윌라가 어느 지역인지 불분명하지만, 창세기 2장 11절과 10장 29절, 그리고 25장 18절에 언급한 하윌라와 같은 땅이라면, 아말렉 사람의 영토는 북아라비아를 포함하여 이집트에서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살고 있다. 에스더에 의하면 아말렉족속은 페르시아까지 뻗어 있다. 도대체 아말렉이 어떤 족속이길래 이렇게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는가? 이 정도로 넓게 퍼져 살았다면, 세속 역사자 어디선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고대 왕들은 자기가 정복한 땅과 민족을 자랑스럽게 나열하는 것이 통례인데 아말렉은 역사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말렉 땅이 불분명한 만큼 아말렉이 어떤 신을 섬겼는지도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고대 민족의 정체성은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 표현한다. 블레셋은 다곤, 모압은 그모스, 암몬은 몰렉, 에돔은 코스(Qos/Qaws) 신을 섬겼다. 그런데 아말렉이 섬기는 신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민족의 구심점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민족이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는 없다. 출애굽기 17장에 이스라엘을 대적한 아말렉에서 에스더에 등장하는 하만까지 무려 천년의 간격이 있다. 이 정도 역사를 이어가려면 분명한 영토와 신과 정치체제를 갖추어야만 가능하다. 특별히 급변하는 중동 정세로 보건대 한 나라나 민족이 몇백 년을 이어가기는 절대 쉽지 않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확고한 정치 체계를 갖추고 왕국을 견고하게 하면서 아말렉의 위협을 제거하였다. 히스기야 시대 시므온 자손 500명은 세일 산에 피신하여 살아남은 아말렉 자손을 모두 멸절하고 거기 거주하였다.(대상4:42-43) 아말렉은 그렇게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에스더에 아말렉의 후손이 다시 등장한다. 더욱이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 죽였는데 그의 후손이 버젓이 살아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삼상15:33) 찍어 쪼개 죽였다는 표현은 잔인성을 뜻하기 보다 철저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각 한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도 모두 죽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아각의 자녀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하만이 아각의 후손이라고 하니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다.


구약학자 앙드레 라콕(André LaCocque, 1927~)은 아말렉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아말렉은 세상 가운데 영원히 존재하는 악의 상징이자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원수를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자신들을 박해하거나 죽이려고 했던 적들을 지칭하는 상징으로 아말렉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에스더 3장 10절에서 하만을 소개하면서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고 하였다. 아말렉은 곧 유대인의 대적이다. 미드라쉬(Midrash:고대 랍비 학교의 구약주석)에 의하면, 아말렉은 하나님의 승리를 가로막는 최종 장애물이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고 역사에서 잊혀진 존재로 만들겠다고 하실 때 신명기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하는데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말렉은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 히브리 민족은 약한 존재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강을 건너온 이주민이었다. 고향에서 살 수 없어 강을 건너 낯선 땅에서 살아야 하는 뜨내기였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경멸의 대상이었다.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노예였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그들은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하만이 아하수에로에게 유다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에3:8)

유다 민족이라 특정하지 않고 그저 이름 없는 한 민족이라고 하였다. 존재 가치가 없는 민족이란 뜻이다. 유다 민족은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살고 있다. 무엇이든 뭉쳐야 힘을 발휘하는 데 유다 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아무런 힘도 없는 나약한 민족이었다. 그들의 법률은 독특하여 왕의 법률, 세상의 법률, 제국의 법률, 강자의 법률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랐다.


신명기 25장에서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아말렉의 철학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와 법률은 약한 자들을 보호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그들이 철저하게 강자의 편에 서고 약자의 편에 서지 않음을 의미한다. 다윗이 시글락에 거할 때 아말렉이 공격하여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잡아 갔다. 그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통곡하며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 어디로 잡혀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말렉족속을 빨리 찾아서 가족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다윗은 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는 애굽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은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 데 병들었다는 이유로 광야에 버려졌다. 다윗은 그 바쁜 와중에 소년을 살리기 위하여 음식과 물을 나누어 주었다. 여기서 아말렉과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태도가 분명하게 구별된다. 아말렉은 약자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빼앗고 괴롭히면서 오직 자기 자신만의 평안을 추구하였다. 반면에 다윗은 가족을 구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굶주려 죽어가는 애굽 소년을 구해주었다.


아말렉의 철학은 하나님의 철학과 정반대다. 그런 면에서 아말렉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미워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말렉의 후손 아각은 어찌하여 유다 민족을 미워하여 그들을 멸절하려 했을까?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만 죽여도 될 터인데 유다 민족 모두를 죽이려 했을까? 여기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만은 아말렉족속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는 악의 대표이다. 그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뜻을 같이 하여 유다인을 미워한 자들이 칠만 오천 명이나 된다.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에9:16)

그들은 혈통적으로 아말렉과 연결이 없는 자들이다. 다만 그들은 하만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아말렉은 바로 이런 자들을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고 하나님의 철학과 정책을 반대하는 길로 가려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신다.(출17:6) 권력에 기생하여 약자들을 괴롭히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방해하려는 아말렉은 우리 주변에도 있다. 아말렉과의 영적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스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 악과 벌이는 운명적 대결의 난관을 타개하는 역사적 돌파구를 놀랍고 절제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의 숨겨진 주장은 종말론적이라 할 수 있다." - 앙드레 라콕


참고도서

1. 요람 하조니, "하나님과 정치" 김구원 옮김 (서울 : 홍성사, 2017)

2. 앙드레 라콕, "히브리 문학의 성정치학" 정희원 옮김 (대구 : 도서출판 코헨, 2011)

3. 임봉대, "아말렉의 비밀" (서울 : 도서출판 조명문화사, 2014)

4. 김진수, "하나님의 백성의 적, 아말렉"  ⌜신학정론⌟ 34(1), 합동신학대학원, (2016)

5. 임효명, "아말렉, 타고난 도둑! 청(독)자의 인종적 편견을 이용한 스토리텔링?"  ⌜신학논단⌟ 79,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2015)

구약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약 1,000년 정도다. 애굽을 탈출하면서 이스라엘이 시작하여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까지가 천년이다. 그 기간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대적자로 늘 존재하였다. 그것은 아말렉이 어떤 특정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아말렉이 이스라엘처럼 특별한 섭리 가운데 천년 동안 보존된 민족이라고 한다면, 세속사에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말렉은 역사적 실재가 아니라 상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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