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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28. 2017

십일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칼뱅과 십일조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를 시행한다. 아직 완전한 과세라 할 수 없지만, 수십 년 동안 미뤄온 숙제를 드디어 치르는 기분이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수년 전부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외부 감사를 받는다. 목사인 나는 교회 재정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각부 위원회를 맡은 장로가 책임을 지고 재정을 운영한다. 교회를 담임한 지 18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18년 전 사례를 그대로 받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헌금 설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회를 건축하면서도 헌금 설교를 하지 않았다. 마치 나는 돈에 있어서 투명하다는 자부심이나 결벽증 같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목사나 교회가 돈에 있어서 깨끗해야 한다는게 나의 평소 소신이지만, 그래도 헌금 설교를 안한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바로 가르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인 과세를 앞두고 요즘 교계나 사회에서 십일조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오늘 방송에서 한 대형교회의 선교비 전용 문제를 다루었다. 한 기독교 신문 어느 평신도가 “칼뱅은 십일조를 걷지 않았다.”는 칼럼을 썼다. 그 칼럼을 읽는 순간 팩트 체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도 나름대로 종교개혁에 대하여 연구하고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정말 칼뱅이 십일조를 걷지 않았을까? 십일조는 과연 비성경적일까?

종교개혁을 연구할 때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은 역사적 배경이다. 중세 말 16세기는 극심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200년을 지속한 흑사병으로 인구는 절반 이상이 줄었다. 인구가 줄었다는 사실은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인구가 줄고 생산이 줄면 당연히 세금도 줄어야 마땅하지만, 세금은 오히려 늘어만 갔다. 높은 세금때문에 고향 땅에서 살 수 없었던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시라고 딱히 먹고 살 일이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구걸하더라도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였다. 일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도시는 실업률이 50%에서 70%에 육박하였다.


가난은 백성의 목을 죄고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귀족, 왕족, 교회의 고위층들은 나 몰라라 하였다. 처음 초대교회는 구약 성경의 정신을 따라 가난한 자들과 땅 없는 레위인(소득이 없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십일조를 거두었다. 물론 초대교회 십일조는 의무사항이 아니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십일조는 소득세처럼 변하였다. AD 585년 마콩(Mâcon) 2차 노회에서 십일조 납부를 법적 의무로 선포하고, 거부하는 자는 파문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처음 프랑코 왕국에서 시작한 십일조 법제화는 11세기에 포르투갈, 13세기에는 덴마크까지 전 유럽이 십일조를 법제화하였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전 국민이 내야 했지만, 귀족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가난한 백성만 내는 세금이 되고 말았다. 중세 말 교회는 십일조뿐만 아니라 각종 명목의 헌금을 거두어서 착복하였다. 중앙 집권화된 가톨릭교회는 모든 헌금을 교회 고위층이 독식하는 구조였다. 수도원의 가난한 사제들은 먹을 것이 없어 음식을 구걸하는 탁발승이 되었다.


가난과 착취와 질병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중세 사회 구조에 저항하면서 투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내건 기치 중 하나가 십일조 문제였다. 교회 고위층 배만 불리는 십일조세는 마땅히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였을까?


스스로 농민의 아들이라고 자랑하던 마틴 루터는 농민 편에 서기보다 귀족 편에 섰다. 작센주의 영주였던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루터에게 수도원과 대학교수직을 주었으며 무엇보다 로마 교황의 살해 협박에서 그를 지켜주었다. 루터는 영주를 외면할 수 없었고 농민은 루터에 대해 크게 실망하였다. 나아가 루터는 농민을 탐욕적이고 도시 물가 상승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노 해방을 외면하고 십일조 폐지에 관한 제안도 무시하였다. 루터는 주장하기를 십일조는 성서에서 증언하고,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하였다. 루터는 십일조가 안고 있는 교회의 문제를 외면하였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가난한 자들의 빈곤 문제에 공감하였다. 그는 1524년 ‘누가 소요의 원인을 제공했는가?’라는 글에서 빈곤의 원인을 세속 권세와 교회 권세가에게 있다고 보았다. 높은 세금, 토지 임대료, 화폐 가치 하락, 부의 독과점을 지적하면서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라도 종교개혁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츠빙글리는 십일조를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십일조는 너무나 자명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고위 성직자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헌금을 전용하고 오남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개혁교회가 십일조를 바로 사용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목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자들은 거짓 목자들이다. 이 일에서 우리 시대의 (가난한) 일반 목자들은 비난할 것이 없다. 고위 성직자들은 십일조와 토지 임대료를 빼앗아가고 사제들은 가난 가운데 손가락이나 빨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므로 모든 교구에서는 십일조와 헌물로써 그들의 목자가 적절히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고 또한 목자가 가난한 자들을 돌볼 수 있게끔 해주어야 한다. 이런 일이 이루어질 때, 백성이 헌금을 하도록 유혹하는 모든 어리석은 일들은 사라질 것이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뱅은 십일조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루터와 달리 십일조를 성경적으로 풀었다. 그는 민수기 18장을 통하여 십일조 문제를 설교하였다. 구약에 땅이 없어 생산할 수 없는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십일조가 사용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의 사제는 레위인인가? 구약의 레위인은 소득 수단이 되는 땅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가톨릭 사제는 큰 땅을 가지고 토지 임대료 수입을 챙기면서 십일조까지 독식하였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는커녕 자기 배만 불리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는 사이비 레위인이다. 그들은 십일조에 손댈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칼뱅은 바울의 말대로(고전9:13-14) 교회에서 일하는 자가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므로 헌금에서 일정한 사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농민들이 주장하는 대로 십일조를 교회 마음대로 전용하는 것은 반대하였다. 그는 1555년 10월 신명기 14장 22절로 십일조 설교를 또 하였다. 십일조는 첫째 레위인들이 박탈당한 유산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둘째 모든 것은 주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첫 소출을 십일조로 바치기를 원하셨다. 셋째, 십일조는 레위인이 포식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른 교인들보다 더 부유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므로 교회는 정당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그는 십일조를 성경의 원칙대로 사용하라고 가르쳤다. 물론 제네바 교회 교인은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바쳤다.


칼뱅은 십일조를 정당하게 사용하려고 힘썼다. 그는 구빈원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도왔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도록 의회에 압력을 가하였다. 교회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지 감시하였으며 불공정 거래나 부당한 이익은 용납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십일조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일조 정신을 훼손하고 자기 배만 불리는 작태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비판하였다. 현재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 당시의 모습과 유사하다. 몇몇 대형교회는 일 년에 수백 수천억의 예산을 가지고 온갖 탈법과 부조리를 자행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90%에 가까운 목회자는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형편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일부 교인들은 '부조리하고 썩은 교회에 십일조를 왜 하느냐?' 항변한다.  

그것은 십일조를 거론하는 말라기 시대와도 흡사하다. 예루살렘 성전의 고위 성직자들은 성전 안에 매매를 합법화시켜 수익을 거두면서 성전세, 십일조, 각종 헌물을 받아 챙겼다. 그들의 부패와 타락은 극에 달하여 이방 여인을 첩으로 들였다. 반항적인 백성(교인)은 ‘타락한 성전(교회)에 헌금하면 무엇하느냐’ 소리질렀다. 그들은 십일조도 바치지 않았고, 성전세 바치기 싫어 예루살렘에 가지도 않았다. 그들은 유대교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들은 가난 가운데 시달리다 밭에 나가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정확하게 말라기 시대나 중세 부패한 교회의 모습과 똑같다. 비판적인 사람은 점점 교회를 떠나간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부 교인은 '십일조를 왜 바치느냐?' 아우성이다. 기독교는 망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종교의 부패함,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을 생생하게 경험한 말라기 선지자가 왜 십일조를 설교하였을까?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함과 타락을 절실하게 느꼈던 종교개혁자들이 왜 십일조를 폐지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십일조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 대형교회 목회자들, 교회의 시스템이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개혁되기 위하여 십일조를 없애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교회 헌금은 투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교회 헌금은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

교회 헌금은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헌금하지 않으면 투명도 정직도 바르게 함도 없다. 다만 죽을 뿐이다. 부패한 교회는 마땅히 개혁해야 한다. 개혁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헌신하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 부패한 성직자, 타락한 교회는 기독교 멸망을 재촉하는 3종 세트다.


* 위의 글은 한신대 황정욱 교수가 쓴 "종교개혁기의 십일조와 가난의 문제"를 참고하여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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