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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30. 2017

첫인상과 끝인상

동짓날이었다. 점심으로 팥죽을 먹고자 함께 사역하는 교역자들과 동네 식당을 찾았다. 동짓날이지만 팥죽을 파는 식당은 없었다. 그러다 가끔 가는 골목 안 작은 식당 앞에 ‘동지 팥죽’이라고 써붙인 종이를 보았다. 그 식당은 키 작고 통통한 할머니가 주방을 맡고, 귀 어두운 할아버지는 식당 안에서 서빙을 하였다. 많은 음식을 할 수 없어서 월,화,수,목,금,토 요일별로 특정 음식을 하나 정하여 팔았다. 원래 할머니 혼자서 김밥과 떡볶이를 파시다가 장사가 잘되셨는지 골목 안에 조그만 식당을 여셨다. 맛도 좋고 값도 저렴해서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였다.

“할머니 팥죽 주세요.”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 맞이하는 할머니에게 주문했다. 할머니는 동짓날 팥죽을 만들어 판다는 사실에 은근 으쓱거리셨다.

“오늘 팥죽을 맛있게 끓였어요.”

잠시 후 팥죽이 나왔는데 맛이 이상하였다. 아! 탔다. 팥죽은 그러저럭 괜찮았는데 솥이 탄 것 같았다. 팥죽 전체에 탄내가 진동하는 데 먹기가 거북했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기에 참고 먹었다. 팥죽으로는 점심이 안 될 것 같아서 김밥까지 추가하였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하였다.

“팥죽 맛이 어때요?”

“할머니 죄송하지만, 팥죽이 탄 것 같아요?”

할머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머니는 급하게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우리는 할머니를 생각해서 팥죽을 끝까지 다 먹어주었다. 계산하려고 나오는 데 할머니는 오늘 식사 값은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한참을 실갱이했지만,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그 식당이 날마다 북적이며 잘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식당은 맛 때문도 아니고 저렴한 가격 때문도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실함과 서비스 정신과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었다.


흔히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첫인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인상이다. 일반적으로 첫인상은 생김새, 표정, 겉모습, 말투, 배경 등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끝인상은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속 모습으로 결정한다. 그 사람의 삶의 모습, 성격, 태도로 결정한다.


세계 1위 도시락 회사인 스토우폭스의 CEO는 김승호 회장이다. 그는 2005년에 미국에서 창업하여 유럽, 호주, 한국에 진출하면서 전 세계 1,300개 매장을 가지고 있다. 연 매출이 3,500억에 달한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각종 강연을 통하여 해외 진출을 원하는 CEO를 돕는다. 그가 강연하는 중에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말하였다. 많은 말을 하였지만, 의미 있게 받아들인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언제나 밝은 얼굴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라. 한 번만 하지 말고 10년, 15년 계속 그런 태도를 유지하라.

둘째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켜라. 한 번만 하지 말고 10년, 15년 계속 그런 태도를 유지해 보라.

셋째 날마다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라. 처음에는 조금 덜떨어지고 부족한 모습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자신을 변화시켜나간다면, 사람들은 그를 주목할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그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단순하다. 성실함을 끝까지 유지하라.


보험회사 직원이 언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보험에 가입할 때다. 그러면 보험금을 지급할 때 그의 태도는 어떠한가? 알지도 못하는 온갖 약관을 들먹이며 어떻게 해서든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객을 맞이할 때 웃기는 쉽다. 그러나 물건을 사지 않고 뒤적이다 그냥 나가는 고객의 등을 바라보며 미소짓기는 어렵다. 물건을 팔 때 정중하기는 쉽다. 그러나 환불을 요구할 때도 정중하기는 어렵다. 회사에 입사할 때 애사심을 표현하기는 쉽다. 그러나 권고사직을 당할 때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 유치부 전도사가 사임하였다. 천안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충성스럽게 사역하던 어린 여전도사였다. 23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어렵게 사는 사역자다. 몸이 약하여 가끔 결석하기도 하더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일 년 반 만에 그만두었다. 딸처럼 생각하였는데 아쉬웠다. 사임 인사를 하고 떠나는 날 우리는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도 우리 모두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였다.

예쁜 손글씨와 함께.

“배경락 담임 목사님

목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기억 가지고 돌아갑니다.

교회 위해서 목사님 위해서 항상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박혜은 전도사 올림”

그녀의 떠난 뒷자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의 첫인상도 좋았지만 끝인상은 더욱 좋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을 감당하는 박혜은 전도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오늘은 지난 3년 동안 함께 사역했던 신성호 전도사가 사임하였다. 그동안 몇 차례나 만류하였지만, 본인이 생각한 계획이 있어서 그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치와 눈치가 빨라서 교회 구석구석에 그의 손이 안 미친 곳이 없다 할 정도다.  토요일마다 원탁 담화에서 지혜로운 질문으로 늘 풍성한 대화를 만들었던 전도사였다. 2017년 마지막 날 그는 교회를 떠나면서 유초등부 학생 한명 한명 모두에게 손편지를 썼다. 교사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작은 선물과 손편지를 써주었다.

"배경락 담임목사님께.

사랑하는 목사님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서북교회가 첫 사역지였는데 처음부터 너무나도 행복한 사역지에서 교역자로 생활하게 되어서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목사님의 본모습을 진즉에 보았다면 첫해에도 사역이 즐거웠을 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사상적 모험가이신 목사님! 목사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글쓰기부터 시작하여 신학의 바다를 항해하는 법과 또 참된 설교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이지요. 매주 토요일 원탁에서 커피를 내려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항상 그리울 것 같습니다. 온갖 잡담과 대화와 가르침으로 가득한 원탁회의도 그리울 것입니다.

아무쪼록 목사님!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처럼 행복하시길 소망합니다. 제 마음 한 켠에는 영적 신학적 아버지셨습니다. 저는 결코 목사님을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이만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신성호 전도사 드림"

아쉽다. 함께 사역한 지난 3년은 마치 가족 같은 사랑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내년 교역자 수련회에 신 전도사를 초청하고 다시 한번 뜨거운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면서 그를 보냈다.  

마라톤 경주에서 일등 한 사람에게 모두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비록 꼴찌라도 끝까지 완주한 사람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꼴찌로 달려갈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창피하였을까?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등수는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완주한 그는 누가 뭐래도 승리자다. 성실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인생 마라톤에 멋진 동반자가 계신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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