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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10. 2018

왜 멘토가 없다고 할까?

Once you make a decision, the universe conspires to make it happen.

당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면, 우주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도와준다. - R.W.Emerson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서쪽 작은 섬 이타케의 왕이었다. 그는 구혼자의 맹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는 갓 태어난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리따운 부인 페넬로페를 두고 전쟁터로 떠나기가 불안하여 친구인 멘토르(Mentor)에게 아들을 부탁하였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도 오디세우스는 돌아가지 못했다. 멘토르는 최선을 다하여 텔레마코스가 지혜롭고 용감한 왕이 되도록 지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없이 자란 텔레마코스는 수동적이고 약하고 소심하며 자신감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왕권을 노리는 자들이 어머니 페넬로페를 따라다니며 청혼하였다. 왕비와 결혼하면 자동적으로 왕이 되고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한 구혼자들이 들끓었다. 20살이 된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구혼자들을 몰아냄으로써 어머니의 명예를 보호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탄식했다.

“그들은 내 살림을 먹어치우고

머지않아 나 자신도 갈기갈기 찢을 것이오.”(호메로스, ‘오뒷세이아’ I,250)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아버지 없는 왕궁에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축낼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과감히 나아갈 것인가? 그는 현실에 굴복하여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잿빛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겉보기에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남자로 거듭나는 여행이었다. 그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여행을 시작하자 아테나 여신은 텔레마코스의 스승 멘토르(Mentor)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격려한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너는 키도 크고 건장하다. 그러므로 용감해라. 앞으로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칭송할 그 날이 올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멘토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만나고 나라를 되찾는다.


댈러스 신대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신학생을 대상으로 멘토가 있는지 조사하였다. 놀랍게도 학생들 대부분은 멘토가 없었다.

“교수님 저에게는 저의 삶의 모델이 되며 바르게 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던 멘토가 없었습니다.

제 삶에 중요한 영향력과 뜨거운 감동을 줄 수 있는 멘토가 없습니다.”

일생 주를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신학생들에게 멘토가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미국 예일대 다니엘 레빈슨(Daniel Levinson)교수는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란 책에서 멘토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한 사람이 성인으로 성정하는 과정에 좋은 멘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부모 없이 자라는 고아와 같은 불행이며 비극이다.' 사람들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훌륭한 멘토를 찾고 싶어한다. 그런데 멘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은 왜 멘토가 없다고 생각하는걸까?


혹시 멘토에 대하여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왕궁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훌륭한 멘토가 나타나 자신을 격려하고 인도하여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누군가 아테네의 여신처럼 나타나 나의 어려움과 고민과 아픔을 해결해 주지 않을까?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품어주면서 나의 삶과 일에 대해 조언하고, 인생의 본을 보여주지 않을까? 부모처럼 나를 전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나를 지지해 주지 않을까? 나를 변화시켜서 보다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 줄 멘토는 없을까? 미안하지만 그런 멘토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서, 변화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서 나를 이끌어줄 멘토를 찾는 것은 바보짓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늘 나에게 잔소리를 하셨다. 완벽주의자인 어머니는 나의 덜렁거리는 모습이 늘 못마땅하였다. 내 방에는 여기저기 벗어 놓은 옷과 양말이며 몸만 살짝 빠져나간 이불이 있었다. 매일같이 내 방을 청소하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잔소리를 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말하였다.

“저놈 결혼해서 마누라 고생깨나 시키겠다.”

그래도 난 변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잔소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텔레마코스가 왕궁에 머물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였다면, 멘토(아테네 여신)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자신감도 없고, 힘도 없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현실에 굴복하여 무릎꿇고 있다면 설령 아테나 여신이 수백명 나타나도 그의 삶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멘토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찾고 훌륭한 멘토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마음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살기에 바쁜데 남의 인생까지 신경 쓰며 조언해 줄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갈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며, 누구도 나의 인생에 책임져 줄 사람은 없다. 더욱이 변화하려는 마음도 없고,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는 자세도 없는 사람을 위하여 시간을 내주거나 마음을 써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텔레마코스가 멘토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고 미지의 바다를 향해 과감히 항해해 나갔다. 멘토가 나타나 도와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인생을 살려고 도전했을 뿐이다. 그가 용감하게 자기 삶을 살아나갈 때 만나는 모든 사람이 곧 멘토였다. 멘토라는 말은 인도유럽어로 ‘생각하게 만들다’는 뜻의 ‘멘(men)’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토(tor)’가 합쳐진 말이다. 멘토는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배철현, 심연, , 21세기북스, 206쪽)


랄프 에머슨은 말하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나은 점이 하나는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배운다.” 그런 면에서 멘토는 많다. 아테네의 여신이 ‘멘토’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일은 그리스 신화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통하여 스스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깊이 성찰한다면 그는 곧 나의 멘토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지상 최고의 멘토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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