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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08. 2018

노년의 삶

다운타운에 있는 밴쿠버 공립 도서관(VPL)에 가서 공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배낭 가방에 노트북과 먹거리를 챙겨 넣었다. 밴쿠버는 해양성 기후라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딱 좋은 온도에 나는 힘차게 지하철역을 향하여 걸었다. 평소 늘 운동이 부족하여 걱정했는데 오랜만에 걸으면서 운동 보충을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에스컬레이터도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다운타운까지 불과 세 정거장이다. 아침 시간이라 역은 북적거렸다. 서울 지하철 역 같지 않아도, 캐나다치곤 제법 붐비는 상황이었다. 곧 도착할테니, 붐비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지하철을 탄 후, 나는 손잡이를 잡고 힘 있는 모습으로 버티고 섰다.


그런데 어럽쇼. 내 앞 의자에 앉은 아리따운 숙녀가 나에게 손짓으로 자기 의자에 앉기를 권하였다. 나는 노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염색도 하였고, 청바지에 배낭 가방까지 둘러메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내가 노인으로 보이나 보다. 서양에는 노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짧은 순간 갈등하였지만, 나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서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졌다. 아가씨는 나를 보호라도 하듯이 내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밀려오는 것을 막아주었다. .


난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부끄러웠다. 노인으로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노인도 아닌 주제에 의자에 앉아서 아가씨의 보호를 받는 게 부끄러웠다. 다행히 두 번째 정거장에서 아가씨는 내렸다.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도서관에 앉자마자 난 노인에 대한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총,균,쇠’를 써서 유명하며,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를 펼쳤다. 제6장 ‘노인의 대우’를 찾았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노인은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 저자는 자세히 묘사하였다.


쿵족은 노인을 무척 공경한다. 쿵족의 20퍼센트만이 60세를 겨우 넘긴다. 사냥하는 일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타 부족의 공격도 심심찮게 있다. 전염병이 돌면 대책 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쿵족의 삶에 내재한 온갖 위험을 이겨내고 60세까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다. G. 가이얄에 의하면 고대 사회 노인은 ‘살아남아 주는 특권’ 때문에 존경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고대 사회에서 노인은 무조건 존경받고 대우받았을까?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녀가 노인을 돌볼 힘과 여력이 충분하다면, 그리고 노인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유익성을 보여준다면, 노인은 대우받을 수 있다. 반대로 노인을 공경할 여력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노인을 유기하거나 죽이는 일이 있다.


왜 노인을 버릴까? 첫째 거주지를 자주 옮겨야 하는 유목형 수렵채집 사회에서 짐을 나르는 가축이 없는 유목민은 모든 짐을 등에 지고 이동해야 한다. 늙고 쇠약한 노인은 그들 사회에 커다란 짐이다. 결국, 노인을 죽도록 버려두고 집단은 이주한다.


두번째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상황이다. 특히 북극권과 사막에서는 심각한 식량 기근이 주기적으로 닥치고, 그런 기근을 견디기에 충분한 잉여식량이 없는 경우다. 고대 사회는 가난으로 늘 시달렸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대부분 보릿고개의 아픔을 겪었다. 때로 산이나 들의 풀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노부모를 먹일 여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 시대 사람들은 늙고 병든 노부모를 지게에 지고 집을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산 속에 버리는 ‘고려장’을 시행하였다.


현대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부모는 무거운 짐이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고, 가끔 찾아가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와 소통이 되지 않아서, 부모와 관계가 나빠서 그러는 경우도 있다. 때로 삶의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동양의 유교 윤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노인의 유용성이 사라진다면, 차갑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노인이 서야 할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 번째 조부모로서 맡았던 전통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되살린다. 쿵족 노인은 손자들을 떠맡아 양육한다. 부모는 마음 놓고 사냥과 채집을 한다. 노인도 노동력이 있는 한 일을 하여야 한다.


두 번째 기술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서 사회는 파편화되어 간다. 노인은 이러한 환경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손자 손녀들에게 가문의 역사, 민족의 역사, 종교의 역사를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전달한다. 노인은 훌륭한 이야기꾼이 된다.


세 번째 노인은 욕심을 버리고 타인을 돕는 능력을 개발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을 갖추어서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소통 안 되는 벽창호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지혜, 인생의 지혜를 전수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자리를 양보받은 경험 때문에 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어른을 공경하라, 노인을 존중하라'고 가르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노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키우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


98세 김형석씨는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썼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관과 가치관을 전수할 목적으로 책을 쓴다고 하였다.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후배와 후손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어 나갈 때 비로소 그들도 노인의 지혜를 배우고자 다가올 것이다. 나도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 넓히는 작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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