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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14. 2018

국민과 인간

신명기와 헌법

“내가 기억하는 유대교의 윤리적 전통은 시오니즘의 바탕과 전혀 다르다. 유대교는 보편성과 인간성에 기초하지만, 시오니즘은 아주 협소한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지주의의 합성물일 뿐이다.” - 하요 마이어(Hajo Meyer, 1924~2014)


하요 마이어는 1924년 독일 빌레펠트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14살이 되던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3등 서기관이 유대인에게 암살당하였다. 그 일을 빌미로 나치는 사건이 일어난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전역에 있는 유대인을 핍박하였다. 유대인의 집과 상점, 종교시설을 조직적으로 불지르며 파괴하고 유대인을 무차별로 구타하고 체포했다. 하요 마이어가 충격 받은 것은 그날 이후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요 마이어(Hajo Meyer, 1924~2014)

마이어는 이듬해 혼자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지만, 전쟁과 함께 나치는 네덜란드도 장악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체포된 마이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고학 시절 익힌 열쇠 수리 기술 덕에 공장에서 일하면서 겨울의 혹한을 면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조스라는 친구 때문이다. 콩나물 시루처럼 좁은 수용소 감방 안에서 공포와 외로움은 극에 도달한다. 매일같이 가스실에 끌려가는 사람들, 무자비한 폭력, 아귀다툼하는 군상들. 강제 수용소는 유대인을 개 돼지로 대우하며 비인간화하는 장소였다. 그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은 그를 심리적으로 죽지 않게 해주는 활력소였다. 처참한 환경에서 서로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우정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의 부모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오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부헨발트의 2만 명을 포함, 약 10만 명에 달했다. 돌아온 10만 명의 유대인을 포함한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나타낸 반응은 다 달랐다.  


1. 파괴적 분노


인간이 겪을 수 없는 비인간적 폭력과 죽음과 공포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은 복수심에 가득 찼다. 그들은 지구 끝까지 나치의 잔당을 추적하였다. 자신들이 당한 고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재판을 통하여 그들을 심판하고자 하였다.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당연한 일이다.  


파괴적 분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들은 피해자요 희생자이기 때문에 그 어떤 짓을 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을 아무리 핍박하고 괴롭혀도 자신들이 당한 고통에는 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다. 처음에 그들의 분노는 나치를 향하다가 곧 이어 대상이 바뀌어 진다. 자신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모든 무리에게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것이 바로 팔레스타인과 아랍 이웃 국가에 행하는 행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전에 나치가 하던 방식 그대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괴롭혔다. 나치의 게토처럼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을 8m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 안에 가두었다. 유대인 한 명이 희생당하면, 그들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폭탄을 투하했다. 사망자의 80%는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마치 스포츠를 관람하듯이, 가자 지구에 폭탄이 투하될 때마다 환호성을 터트리고 박수를 쳤다. 파괴적 분노는 윤리적으로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나아가 육체적 죽음까지 시도한다. 독일에게 그런 수치와 모욕, 폭력과 죽음을 당했으니 이제 그들도 그런 짓을 할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이 바로 시오니즘이다.  


마이어가 역겨워 한 것은 바로 같은 동포인 유대인들의 파괴적 분노다. 마이어는 외쳤다. “시오니즘은 아주 협소한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지주의의 합성물일 뿐이다.” 마이어는 시오니즘이 지독하게도 편협한 이기적 국가주의에 빠져 독일과 똑같은 폭력을 자행한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2. 성찰적 분노, 윤리적 분노


마이어라고 독일에 대해 분노가 없을 까닭이 없다. 그의 부모는 나치의 손에 죽었다. 그는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였고,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피해자로서 남을 괴롭힐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가둔 가해자들과 희생자들의 내면을 객관화 하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칭송 받는 사람도 완벽한 인간일 수 없다. 만약 누군가를 완벽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살아가면서 상처와 잘못, 고통과 피해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성찰적 분노는 어떤 사건이나 행위에서 부당함, 불의함, 불공평성 등을 분석한 후, 그 분석에 따른 윤리적 판단을 반영하는 분노다. 성찰적 분노는 피해를 준 인간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그가 한 행위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한 행위가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성찰하고 그것이 오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한다.  


유대인이면서도 반시오니스트가 되어 유대인을 비판한 마이어는 성찰적 분노자다. 그는 독일이 저질렀던 행위나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행위가 같다고 보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은 유대인이 파괴적 분노를 단절하고 두 번 다시 이런 만행이 없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과거의 독일인이 저질렀던 악행을 단절하는 데 실패하였다.  


3. 출애굽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애굽 땅에서 400년 동안 종 생활을 했다. 그들이 겪었던 비인간적 폭력과 죽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과 비교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파라오의 말 한마디에 유대인 남아는 출산과 즉시 살해되었다.  400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그들에게 희망이란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지막지한 폭력 속에서, 인권이란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희생자들, 피해자들, 약자들이었던 그들은 자기 민족 정체성을 가졌을까? 민족에 대한 정체성은 18세기에나 이르러서 가지기 시작했지 고대 사회에서는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히브리인이라 규정하였다. 히브리인이란 말은 고대 히브리어로 ‘하피루’로서 강을 건너온 사람이란 뜻이다. 도시에서 살 수 없어 아무런 기약도 없이 강을 건너 뜨내기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히브리인이다. 그들은 정착민이 아니라 뜨내기로서 어디를 가든 눈치 보며 기웃거리며 살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이다. 노예, 도망자, 범죄자, 난민, 외국인, 나그네가 히브리인이다. 애굽에서 폭력과 죽음 앞에 노출된 그들 모두는 히브리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건져 주시고 나라를 세우실 때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신24:22) 너희가 핍박 받던 약자였으니 이제 너희는 남을 괴롭힐 특권을 가졌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런 약자들이었니 다른 약자들을 보살피고 품어주라는 뜻이다. 나라를 세웠다고, 돈이 있고 힘이 있다고 약자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는 나그네(이방인)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22:21,23: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전은 자국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 나그네까지도 보살피라는 것이다. 약자였고 피해자였고 희생자였던 유대인에게 요구하신 하나님 나라는 전에 종되었음을 기억하고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나그네와 외국인을 품어주고 안아주라는 것이다.  


4. 국민과 인간


요즘 개헌 논의로 사회가 시끄럽다. 1987년 6.10 항쟁 결과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이후 거의 31년 만에 헌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개헌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힐 처지는 못된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권에 대한 규정을 제대로 했으면 한다.  


아쉬운 것은 대한민국 헌법 10조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 아주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적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 교회에서 필리핀 노동자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난 엄청난 충격을 우리 교인들에게 받았다. 그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을 싫어하였다.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교회 화장실 사용도 하지 못하게 했다. 교회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도 싫다고 하였다. 공장에서 임금이 체불되고, 불의한 사고를 당하여도 교회는 손을 쓰지 않았다. 나는 필리핀 목사와 함께 체포된 노동자를 찾아다녔으며, 사고 당하여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하였다. 불법 노동자를 체포한다는 이유로 주일날 교회도 마음대로 나올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과 억울함을 대한민국 국민은 잘 모른다.  


사실 우리도 애굽 땅에 종 되었던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지만, 36년간 일제의 압제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그것만을 자랑 삼지 않고 3.1 운동과 4.19 민주 항쟁을 명시하므로 불의와 억압에서 투쟁하며 자유를 쟁취한 것을 우리 대한국민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대한국민은 누구보다도 약자의 심정을 헤아리고 살필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안타깝게도 국민에 대한 규정은 그럭저럭 했지만, 외국인과 나그네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규정은 없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체주의 군국주의 아래서 비인간적 만행에 자극 받아 세계 각국은 인간 존엄성을 헌법에 명시하기 시작했다. 1948년 유엔은 세계 인권선언을 발표하였다. 제1조에서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이고 또 존엄 및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및 제3조에서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로 규정하였다. 국제 연합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 및 기본권의 자유를 존중하도록 조장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각국 헌법에 이를 반영하도록 권장한다.  


미국 독립선언문(1776)은 선언한다. “우리는 다음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는데, 그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이 있다.” 그들이 독립하면서 ‘국민’이라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라고 폭넓게 규정 한데는 이유가 있다. 억압과 폭력을 경험한 약자로서 다른 약자를 생각한 것이다. 차제에 개헌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헌법에도 이제는 ‘국민’이라는 제한적 범위에서의 행복 추구권, 기본권을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한 시대에 걸맞고 보다 폭 넓게 ‘인간’의 행복 추구권,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으면 한다.  


참고도서

1. 최윤필, 가만한 당신, 마음산책, 2016년

2. 강남순, 정의를 위하여, 동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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