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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12. 2018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누구인가? 세계 인구의 약 30%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개신교 11.41%, 천주교 15.13%, 정교 3.51%, 유사기독교 2.33%)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식 수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를 2000년으로 되돌려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고 온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할 사명을 가진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막막하고 답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했을까? 요즘 상식 수준에서 대답하면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으나,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 왕을 피하여 애굽으로 잠시 피난갔다가, 다시 나사렛에 돌아와서 성장하였다. 예수의 아버지는 목수 요셉이었고, 어머니는 마리아였다. 그는 30세가 되자 세상에 나와 복음을 전하였으며, 12명의 제자를 두었다. 안타깝게도 사역한 지 3년 만에 십자가형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다 승천하셔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오실 것이다.

초대교인들이 생각하였던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그런 분일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쓴 책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 고심하였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마태복음 1장의 이름들을 보면서 단순한 족보로 생각한다.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씀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창12:1-3) 그것은 유대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지리멸렬하였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을 가졌던 다윗과 같은 왕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마가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였을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유대교의 세계관을 완전히 깨트리는 선언이다. 유대인 중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하면, 그건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이고,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 마가는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관습적으로 전해져 오던 유대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박살 내고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 때문이다.


흔히 선교할 때 제일 문제 되는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소개될 때 하나님을 ‘상제(上帝)’로 번역하였다. 그건 조선의 민간 신앙에서 최고신으로 소개하는 옥황상제를 연상하게 된다. ‘상제’라는 말이 가지는 뉘앙스 때문에 성경의 하나님을 바로 전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미신적 신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하느님’, ’한울님’, ‘한얼님’ 등 다양한 단어를 가지고 고민하였다. 모두 하나님을 참되게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세계관 때문이다. 우리가 이전 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깨트리지 않고서는 성경의 하나님을 바로 소개할 수 없다.


마가는 바로 그 작업을 한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물론 구약의 복음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구약의 복음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들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들이 만든 종교적 전통과 규례와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구약 복음을 변질시켰다. 마가는 파격적인 단어를 사용하므로서 유대교의 껍질을 깨버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역사가였던 누가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신화나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사실임을 강조하였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눅1:1) 불과 33년의 생애 중에 3년의 공적 생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짧은 생애는 거짓된 신화로 덧칠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때도 영성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하였다. 누가는 예수의 역사성을 증거하였다


네 번째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의 묘사가 가장 극적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예수님을 어디에서부터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던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하나님이셨고 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그 말씀’(the Word)이라고 소개하였다. 1) 예수님을 소개하려면 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바로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야 했으며,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야 했는지를 설명하려면, 창조 이야기를 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각하셨던 그림이 무엇인지를 소개해야 예수님의 오심을 설명할 수 있다. 예수님은 오심은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주의 역사까지도 이해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성경학자들이 역사(history)를 예수님 이야기(his+story)라고 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예수를 바로 소개하기 소망하는 자는 역사를 꿰뚫는 눈이 있어야 한다. 성경 역사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까지도 통찰하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개해야 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의 근원으로서 사명을 받았던 아브라함. 애굽에서 고통받으며 신음하던 노예들을 부르셔서 외국인과 나그네를 환대하는 나라를 세우라는 사명을 받았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하고 다스려서 샬롬(평화)의 나라 만들라는 사명을 받았던 다윗 왕국.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는커녕 물욕과 폭력과 학대와 착취로 얼룩진 나라를 만들었다. 창조 때 계획하셨던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들 수 없음이 분명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났고 어둠은 온 땅을 덮었다.


모두가 희망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둠을 찢으시고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죄악 된 세상의 폭력 앞에 신음하던 사람들을 구원하고, 평화의 나라, 기쁨의 나라, 정의와 공의가 강수같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첫 일성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였다. 그분의 마지막 가르침이 ‘하나님 나라’였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간단하게 소개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역사를 통찰하는 해석력, 죄악 된 사회의 실상을 꿰뚫는 혜안,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데 결코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이다. 베뢰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을 공부하였다. 성경에 무식한 목회자는 성경에 무식한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로서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주의 말씀을 깊이 상고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나는 오늘도 두려움으로 성경을 펼친다.


1) 레슬리 뉴비긴, ‘오픈 시크릿’ 홍병룡 옮김, (복있는 사람;서울) 2017년,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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