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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24. 2018

신명기와 헌법

신명기 1:1-5

프랑스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의 수호자로 나서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필요하였다. 루이 14세의 사부로 뽑힌 자크 베니뉴 보쉬에(Jacques-Bénigne Bossuet,1627-1704) 주교는 국왕 신격화에 앞장섰다. 그는 '모든 권능과 모든 완전성을 내면에 결합한 신은 또한 국왕의 인격과 결합하였다. 신은 거룩함 그 자체이며, 선 그 자체이고, 권능 그 자체이다. 이 모든 것 안에 신의 주권이 있다. 이 모든 것의 표상 안에 군주의 주권이 있다'고 말하였다. 국왕은 신의 지상 대리인으로 신성하다고 하였으며 누구든지 국왕을 비판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며 종교와 양심에 따라 국왕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하였다.  

5살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1638~1715)는 왕권신수설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야생트 리고(Hyacinthe Rigau y Ros, 1659~1743)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신적인 권세를 부여받은 통치자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높고 과장된 가발과 몸에 휘두른 거대한 푸른 망토, 흰 타이츠로 드러낸 다리와 붉은 장식이 달린 하이힐. 초상화 속의 루이 14세는 당당하고 패셔너블하며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군주의 초상은 거룩한 것으로 성찬식의 성체와도 같이 백성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루이 14세가 실제로 ‘짐은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고 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절대왕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통치권을 과시하고자 파리 근교에 베르사유 궁전을 세웠다. 그 궁전의 정면은 길이만도 530m다. 궁전 내부에는 프랑스 군대의 승리와 국왕이 개선하는 그림이 걸려있고, 건물 전체에 거울을 설치하여 가물거리는 빛을 반사하므로 그가 태양왕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귀족들은 일 년 중 일정 기간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보좌하여야 했다. 궁전에는 비굴한 찬양과 경박한 오락, 음모와 추문, 사치스러운 향락으로 가득하였다. 왕이 하는 일이면 그것이 비도덕적이건, 위엄을 떨어뜨리건 간에 신하들은 소리 높여 찬양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프랑스는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 범죄는 범람하였고, 과중한 세금에 견디지 못한 백성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당시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백성의 상황을 글로 옮긴 보반(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1633~1707)이 있다. 그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 전 인구의 10분의 1은 거지였으며 10분의 5는 거의 거지 상태에 있었고 10분의 3은 가난하고 빚진 자들이었다. 나머지 10분의 1은 부유한 행운아들이었다. 그는 왕에게 편지를 썼다. “폐하께서 프랑스를 가난의 도탄 속에 몰아넣고 이에 대한 지극한 찬양을 받고 계십니다. 폐하는 이 나라 모든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파멸한 그 폐허 위에 당신의 보좌를 세웠습니다.” 루이 14세가 그 편지를 읽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궁전 안에서 향락에 취하여 사는 사람들은 백성의 아픔에 아는 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위하여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두었다. 왕의 명령에 비판하는 자나 저항하는 자는 잔인하고도 야수적인 방법으로 처단하였다. 왕이 권력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백성과 거리가 멀어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씨는 이 기간에 뿌려지고 있었다.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대는 왕에게 백성은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혁명이 내건 슬로건 중에 자유와 평등은 법 앞에서의 자유와 평등이었다. 왕이 자기 편한 대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귀족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얼마나 자유를 누리는지,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지를 따져 백성의 대표가 만들었다. 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베르트랑 바래르(Bertrand Barère)는 1793년 10월 19일 국민공회에서 연설하였다.  

“프랑스 대공화국의 헌법은 몇몇 사람의 작품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자유의 신성한 깃발을 곳곳에 세우려는 여러분을 돕기 위하여 우리가 가진 모든 값진 것을 바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을 선서합니다.”

그들이 만든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였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거주하는 권리를 갖는다”(1조) “자유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데 있다.”(4조)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도 명시하였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백성의 손에 의하여 백성을 위한 법을 만들었다. 물론 그 법은 완전하지 않다. 세상의 법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바뀌고 또 바뀌어야 하는 불완전함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법을 시행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그러나 법 하나를 고치기 위하여 힘없는 백성은 무수한 피를 뿌려야 했고, 싸워야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까지 이르렀다.  


대한민국도 32년 만에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절대로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양보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다.  


세상 나라의 헌법과 달리 신명기 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신1:3)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신1:5)


신명기는 모세가 만든 법이 아니다. 왕이 만든 법도 아니고, 백성이 만든 법도 아니다. 신명기는 어느 사람이 만든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법이다. 구약 성경의 한가지 특징은 이스라엘 왕이 법을 만들거나 선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강력한 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악한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기 멋대로 법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 외에 다른 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법 아래 왕도, 귀족도, 기득권층도, 백성도, 가난한 자도, 외국인도 모두 공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법을 따라 나라를 다스리도록 세가지 직책 - 왕, 제사장, 선지자-를 주셨다.


왕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 행할 의무가 있었다. 이스라엘 왕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평과 정의였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삼하8:15, 새번역) 솔로몬이 간구했던 것도 “백성을 판결하기 위하여 선악을 분별할 지혜”였다. (왕상3:9)  이스라엘의 왕은 요즘 말로 하면 재판관으로 법을 집행하는 자였다.  


제사장은 법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책무가 있었다. (신33:10)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므로 백성을 깨우쳐야 했다. 그들의 권리가 무엇이고, 그들이 어떻게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백성이 무식하여서 법이 무엇인지, 권리가 무엇인지,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모르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걸 막아야 할 첫번째 사람이었다.


선지자는 왕이 재판을 얼마나 공정하고 바르게 하는지 감시 감독하였다. 만일 그들이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바르게 집행하지 않으면 참지 않았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걸고 바른 소리를 하였다. 하나님의 법을 굽혀 놓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암5:12)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사1:23)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잠29:4)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미가 선지자는 탄식하였다. 왕과 재판관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는 짓을 하였다. (미3:11) 하나님의 법을 지킬 마음도 없고, 시스템도 없고, 감시할 자도 없는 이스라엘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국운을 가름하는 잣대와 같다. 신명기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법이다. 비록 수천 년 전 선포된 하나님의 법이지만 절대 고리타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사랑하여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들이 서로 돌보고 사랑하며 사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주신 법이다. 하나님의 법은 약자, 가난한 자, 고아, 과부, 외국인과 나그네, 난민, 노예들도 사람으로 대접하는 법이다. 마음 문을 열고 신명기를 읽어보면, 세상의 그 어떤 법도 가지지 못한 아름답고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권을 강조하는 세상의 모든 법들이 신명기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인 신명기와 세상의 헌법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많은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명기는 과거 역사 속에 묻힐 법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새롭게 발굴해야 하는 법이다.


참고도서

1.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국제제자훈련원;서울) 2014년

2. 로랑 드보, '구약시대의 생활풍속', 이양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서울) 1993년

3. 올리브 와이언, '신에게 가까이', 정행덕 옮김, (대한기독교서회;서울) 1982년

4. 주디스 코핀, 로버트 스테이시,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 하' 손세호 옮김(소나무;서울) 2014년

5. 고봉만, '루이 14세의 공식 초상화에 나타난 색채,의복 그리고 상징', 한국프랑스학논집 97. 한국프랑스학회, 2017년

6. 서정복, '프랑스 혁명기 자유와 평등의 입법화 과정'서양사학연구1, 한국서양문화사학회,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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