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이스라엘은 노예들이 세운 나라다. 유대인은 원래 애굽의 노예였다. 오늘날 노예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예에 대한 개념 정립이 쉽지 않다. 노예는 살아있는 인간이긴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현대에는 사람과 인간을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고대에는 사람과 인간을 구분하였다.
사람은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사람은 공동체 안에 자기 자리를 가지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법적 보호를 받는다. 반면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이지만, 공동체 안에 인간관계가 없으며, 법적 보호도 없다. 예를 들어 태아는 생명체로 인간이긴 하지만, 아직 사람은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아기는 할례 의식과 함께 이름을 주므로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으로 인정한다. 현대에는 출산 후 별다른 통과의례가 없지만, 고대 사회에는 출산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산다는 보장이 없었다. 의료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였기에 태어나자마자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 우리나라도 태어난 후 몇 년이 지나서 이름을 호적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영아 생존율이 낮았다.
만일 아기나 태아가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 죽는다면, 장례예식을 치르지 않았다. 아직 사회적 관계를 만들지 못한 단순한 생명체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아기 시신을 땅에 묻었다. 스파르타 같은 경우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절벽에 떨어뜨려 죽였다. 예전 우리 조상도 아기가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으면, 젖도 주지 않고 윗목에 엎어놓아 죽기를 기다렸다. 의료환경이 좋아지고, 인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오늘날에는 출생과 더불어 사람으로 인정하였지,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간으로 대표적인 경우가 노예다. 노예는 있으나 없는 존재다. 노예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예가 죽었다고 장례식을 치러주는 경우는 없다. 노예는 인간이나 물건으로 취급받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으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노예는 지켜야 할 체면이 없다. 체면이 없다는 말은 사람으로 지켜야 할 명예가 없다는 뜻이다. 고대 로마 사회에 귀부인이 목욕할 때 남자 노예가 목욕탕을 오가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노예는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트롤로프의 ‘미국인의 가정예절(Domestic Manners of the Americans)’에 흑인 남자 노예 앞에서 태연히 코르셋을 졸라매는 숙녀나, 밤중에 깼을 때 목마를까 봐 부부침실 한구석에 여자 노예를 재우는 신사가 있다. 노예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부부의 성생활이나 나체를 보여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노예는 사회에 그 어떤 공간도 주지 않았다. 여기서 공간이라 함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므로 사회에서 제공하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물건처럼 취급하였기에 주인이 노예를 학대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가전제품을 망가뜨리거나 쓸모없다고 폐기한다고 해서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노예는 기계와 같았다. 산업 생산을 위하여 쓰일 뿐이지, 고장 나면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죽여 버렸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일에 지친 나머지 늦은 밤 노예들의 “무릎이 툭툭 꺾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하기를 노예는 이성이 없고,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도 없는 존재라고 하였다. 노예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할 뿐이다. 토마스 모어가 이상세계를 그린 유토피아에도 노예가 나온다. 이상세계에서도 노예는 인간 자격을 박탈당하고 짐승처럼 취급받는다. 한마디로 노예는 생산을 위하여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불평할 수 없는 존재다. 사회는 노예에게 단 한 뼘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들이 나라를 세울 꿈은 고사하고, 자유를 얻기 위하여 몸부림쳤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쿠스 난이나 고려 시대 만적의 난은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노예의 반란은 곧 죽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노예들이 세운 나라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신5;15)
하나님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이 사실을 계속하여 상기시켰다. 노예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꿈도 꿀 수 없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나라는 매우 특별한 나라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노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사람도 아닌 노예를, 짐승이나 물건 취급받던 노예를, 사람 만들어 주고 세운 나라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것은 노예가 없는 나라였다. 비록 현실적으로 노예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려주시는 궁극적인 나라의 모습은 노예 없는 나라였다.
하나님은 노예를 위한 특별한 법을 선포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형제가 노예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레25:39-40)
친인척은 언제든 자기 형제를 속량할 수 있으며(레25:48-49) 만약 속량하지 못하면, 6년 후 주인은 반드시 그를 자유롭게 하며, 그동안 일한 것의 품삯을 넉넉히 쳐서 곡식과 양과 포도주를 선물하도록 하였다.(신15:12-14)1) 그것은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은혜를 넉넉히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다. (신15:15)
더욱 놀라운 사실은 외국에서 도망쳐 온 노예를 처리하는 법이다.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신23:15-16)
많은 학자가 본문의 노예는 이스라엘 노예가 아니라 타국에서 도망쳐 온 이방인 노예로 해석한다. (Roland de Vaux, Barulik, Craigie, McConville, Tigay) 이스라엘 노예를 처리하는 율법은 신명기 15:12-18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스라엘 노예는 형제로 대하였기에 도망칠 만큼 가혹하지도 않았고, 6년 후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신명기 15장에서도 도망친 이스라엘 노예를 언급하지 않았다.
고대 사회에 도망친 노예는 보호하지 않았다. 국가 간에 동맹을 맺을 때는 반드시 도망친 노예를 반환하는 항목이 있었다.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에 아무리 제 발로 갔다 할지라도, 노예를 돌려주지 않는 것은 남의 재산을 도적질한 것이다. 만일 도망친 노예를 보호하고 내놓지 않으면 외교분쟁이 일어나고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 하무라비 법전은 노예가 도망하도록 도와주거나, 돌려주지 않거나, 숨겨준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였다. 따라서 외국으로 도망친 노예를 보호하고 그에게 땅을 주고 살도록 한 이스라엘 법은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하였다. 이스라엘이 이 법을 지키려면, 외교적, 국제적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확고하게 신뢰할 때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이 법을 지켰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그들이 지키건 안 지키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노예들이 세운 이스라엘 나라의 이상적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보여주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법을 철저하게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주변 나라에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노예의 꿈과 소망은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희망의 나라요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로 가고 싶어할 것이다. 멕시칸이 목숨을 걸고 미 국경을 넘으려 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였을 것이다. 돈을 위해 넘는 것이 아니고, 자유를 위해, 사람으로 대접받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고자 도망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이 법을 확실하게 지키면, 성경은 이스라엘이 열방에 빛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이 이 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지만, 구약에 나타난 유대 관습을 살펴보면, 이 정신이 조금은 묻어 있다. 그들은 이방 노예에게 안식일 휴식을 주었으며(출20:10, 23:12)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식사하는 희생 제물의 식사에도 동참하였고(신16:11,14) 유월절 예식에도 참여하였다.(출12:44) 그들은 할례를 받았으며 율법을 낭송하는 종교 예식에도 참여하였다. 그들이 정식 유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듯 보이지만, 그림자나, 짐승이나, 물건으로 취급받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초대 기독교는 로마 시대 노예를 적극 수용하였다. 그들도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였고 그리스도 공동체에 기꺼이 받아주었다. 기독교는 로마 시대 노예, 외국인, 도망자, 난민, 타자, 뜨내기들에게 소망이었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기독교가 주류 사회에 편입하면서, 더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현대 교회가 사람과 인간의 미묘한 구분을 바로 인식하고 깨닫기를 소망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통하여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고자 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부름을 받은 행인과 나그네 같은 존재다.
주
1) 출애굽하여 선포한 레위기에서는 희년까지 섬기도록 하였지만, 출애굽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신명기에서는 6년 후 안식년까지 섬기도록 하므로 종으로 사는 년수를 대폭 줄였다.
참고도서
1. 김현경, '사람,장소,환대' (문학과 지성사 : 서울) 2015년
2. F. 라우프,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 박영옥 옮김 ( 한국신학연구소 : 서울) 1991년
3.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 (국제제자훈련원 : 서울) 2014년
4. 알베르토 안젤라,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주효숙 옮김 (까지 : 서울) 2014년
5. R. 드보, '구약시대의 생활풍습', 이양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 서울) 1993년
6.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세상을 알라'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 파주) 2018년
7. 요아힘 예레미야스,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한국신학연구소 : 서울) 1989년
8.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김남우 옮김 (문예출판사 : 서울) 2013년
9. 프레드 와이트, '유대인의 풍습과 관습' 라형택 옮김 (로고스 : 서울)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