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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22. 2015

최악의 델리 여행

인도여행기

어제 우리는 최악의 밤을 보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추운 호텔은 보지 못했다.

사실 이 호텔은 우리가 델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숙박했던 호텔이었다.

선교사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는 호텔이고 와이파이까지 제공해주는 꽤 괜찮은 호텔이었다.

우리는 익숙한 호텔에 돌아왔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덮고 있는 이불이 지난번과 달리 홑겹으로 된 얇은 것이라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는 밤새 달달 떨면서 밤을 지냈다.

인도에서 전기장판이 필요하고 침낭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마 인도같이 따뜻한 나라에서 추위에 떨며 지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옆방을 찾아갔더니 그곳도 역시 상황은 같았다.

이광성 목사는 인후염에 몸살, 강 집사는 담으로, 나는 몸살감기, 두통, 설사가 찾아왔다.

세 사람은 끙끙대면서 겨우 몸을 추스르며 준비해간 상비약을 먹고 억지로 일어섰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하였지만, 여전히 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임한중 선교사가 단 하루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정대로 임선교사의 동생이 준비한 차로 델리 투어를 시작하였다.

사실 인도 선교 여행을 먼저 한 김수걸 목사와 김영승 목사가 나에게 강추한 곳이 바로 올드델리의 시장 골목이었기에 아무리 아픈 몸이지만 그곳은 가보고 싶었다.

다행히 준비한 차는 좋은 차라서 그나마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인도문

우리는 제일 먼저 인도문에 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인도를 독립시켜 주겠다는 영국의 말만 믿고 참전하여 전사한 9만 명의 인도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문이다.

강대국의 거짓 약속에 속은 것이지만 인도는 아직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레드포트
레드포트

두 번째는 올드델리에 있는 레드포트로 향하였다.

레드포트는 붉은 성이란 뜻으로 약 2000년에 걸쳐 지어진 어마어마한 성이다.

그 스케일과 규모는 상상을 불허할 거대한 성이었다.

우리는 밖에서 간단히 사진 몇 장 찍고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올드델리의 시장 골목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기대만큼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라나시의 골목길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올드델리의 시장골목도 나름대로 풍미가 있는 곳으로서 사진가들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던 주님의 무거운 발걸음이 연상되었다.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르는 이 목사에게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최악입니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델리투어를 멈추고 돌아가자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이드를 하는 임선교사 동생은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하여 골목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인도의 소음은 지독한데 시장통이라 더 심하였다.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는 그 소음들과 뒤엉켜 울리기 시작했고 가게마다 피어대는 인도의 향냄새로 속까지 울렁거렸다. 

최대한 느린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데 천근 만근이었다.

2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다.

잠깐 쉬자고 부탁하여 좁은 길에 있는 인도식 짜이를 한 잔 시켜 먹었다.

좁은 골목 작은 기둥을 의지하여 버너를 놓고 때꾹물이 주르르 흐르는 작은 주전자에 물을 끓여 짜이 한 잔씩 따라주는 길바닥 카페였다.

어디 앉을 의자도 없고 계단도 없어서 지나가는 손님들을 적당히 피해 가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공간조차 없었다.

마침 문구류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그 가게 입구에 엉덩이를 기대었다.

병든 닭처럼 앉아서 짜이를 마시는 내가 불쌍했는지 가게 주인은 무어라 야단치지 않았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우리는 점심이라도 제대로 된 고급 식당에서 먹고 원기를 회복해 보자는 생각에 이태리 식당을 찾아갔다.

분위기나 장식은 제법 괜찮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나는 식탁에 머리를 대고 그만 짧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준비한 식사가 나왔을 때는 머리 아픈 게 조금 가셔서 먹을 수가 있었다.

음식 맛은 그런 데로 맛있었다.

그러나 이광성 목사는 먹으면 토할 것 같다고 하면서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식당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항상 해피메이커였고, 궂은일도 마다 하지 않던 기골이 장대한 이 목사가 누우니 우리는 더 이상 델리 여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약국에서 사 온 인후염약, 몸살약, 두통약을 먹고 우리는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오후 2시에 누워서 그 다음 날 아침 8시에 일어났으니 무려 18시간 누워 있었다.

그동안 몸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강 집사는 우리를 위하여 마트에 가서 김치도 사 오고 누룽밥도 만들어서 잠시 저녁에 일어나 요기를 하고 다시 누웠다.

우리 두 사람이 걱정된 강 집사는 두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열도 재고 살펴보지만, 마땅히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강 집사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도 여행기 

8. 눈물의 초코파이 - 슬럼가 학교

7. 최악의 델리 여행

6. 인도 요리

5. 빨래하는 사람들

4. 마사지와 라씨

3. 바라나시에서 만난 철수 

2. 바라나시에서 첫 날

1. 인도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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