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죽음이 두려웠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의 아버지 Karl Ludwig Nietzsche(1813-1849)는 36살 젊은 나이에 뇌연화증으로 갑작스럽게 죽었다. 니체 나이 불과 5살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한 해 뒤 남동생 요셉이 죽었다. 그것은 니체에게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는 십 대 때부터 머릿속의 울혈 때문에 두통을 자주 느꼈다. 니체는 스스로 이 병이 유전이라고 믿었으며 아버지 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니체를 혹평하는 사람들은 그가 대학에 입학한 후 창녀촌에 갔다가 매독에 걸린 사실을 가지고, 그의 매독균이 뇌에 들어가 정신이상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뇌매독은 전신마비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러나 니체는 정신이상이 된 이후에도 계속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의 필체를 보면 마비증상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 의학자들은 니체의 병이 뇌암이나 뇌종양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무튼, 니체는 일생 지독한 두통으로 고통을 받는데, 어떤 경우는 일어날 수도 없어 침대에만 누워지내야 했다. 그는 친구인 페터 가스트에게 편지하면서 “나는 깨지기 쉬운 기계 같은 존재라네.” (1881년) 하였다.
그는 늘 죽음을 의식하였다. 그는 프랑스와 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한다. 전쟁터에서 주검과 부상자를 관리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시체가 즐비한 끔찍한 광경, 사지가 잘린 채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 희망 때문에 나는 직접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후송되는 부상자와 함께 누워서 그를 돌보던 어떤 외로운 밤. 나의 생각이 비극의 세 가지 심연을 떠올렸던 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말하자면 바로 광기, 의지, 고통입니다.” (니체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뤼디거 자프란스키, 문예출판사, 103쪽)
그는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잠언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초상집에 간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자찬 묘지명’이라고 해서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는 경우가 많았다. 다산 정약용도 자찬 묘지명을 두 번이나 썼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치열하게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 철학을 삶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그만큼 죽음을 늘 가까이 두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니체는 죽음의 고통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알맞은 때를 살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알맞은 때에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황문수 역, 문예출판사, 111쪽) 니체는 삶을 옹골차게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만이 제대로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늙고 병들어 가련한 육신의 껍데기만 가진 체 수동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비겁한 죽음이라고 하였다. 차라리 자유의지의 결단으로 자발적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당당하게 살 수 없다면, 당당하게 죽는 것, 즉 생명권을 포기할 권리 역시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가 죽음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당당해지려면 삶 앞에서도 당당하라는 것이다. 내가 삶을 두 번 살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후회함 없이 다시 한 번 그 삶을 살아낼 자신으로 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죽음 조차도 후배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살라는 것이다.
그는 순교자적 죽음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는 정신이상이 되어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어머니와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간호를 10년 동안 받으며 힘없이 죽어갔다. 사람이 생각처럼 삶을 살아내고 마감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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