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는 연구하고 공부하는 교수이다.
나는 이점이 마음에 든다.
그의 책을 펼치면 실망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땀 흘려 연구한 성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그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너무나 쉽게 이 열매들을 거둔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책을 늘 곁에 두고 읽는 나로서 한가지 재미난 현상을 발견하였다.
역사학자들은 대개 거시사에 관심을 두고 책을 쓰는 것 같고, 한학자나 국문학자들은 미시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일단 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국문학자들은 고전 텍스트에 집착하여 바르게 읽고 번역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전공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병설(서울대 국문과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등이다.
이들이 번역한 책들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한 책들로 믿고 읽을만한 책이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쓴 책만 읽다가 요즘 들어 이분들의 책을 주로 읽는데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참으로 뛰어나다.
어느 학문이든 원본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이 최고다.
그런 면에서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거나, 거시적으로 보는 책들은 한 두 권이면 더는 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미시사의 역사는 참으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깨닫는 바도 많아지고, 역사의 뒷 이야기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이들의 책을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18세기 조선에 대한 지난 7년간의 연구 성과를 묶은 책이다.
저자가 발견해 낸 것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과거의 지식인들과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매니아적인 삶을 살았고 공부를 하였다.
어느 한 가지에 미친 듯이 몰두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몰입의 상태, 즉 벽(癖)이다.
박제가는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했는데 정민 교수 역시도 벽이 있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18세기 학자들에게 얼마나 몰입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비록 논문 형식으로 쓰여서 후반부로 갈수록 읽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18세기는 조선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매우 특별한 시기였다.
유럽의 계몽주의 학자들이 중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백과사전적 저작에 몰입하였듯이 조선의 지식인들도 주자학 일변의 문화에서 벗어나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내는 독특함을 보여준다.
18세기 지식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늘날 넘쳐나는 지식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는 많은 사람에게 올바른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과거 조선 시대 이야기여서 고리타분할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적 성향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가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는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더욱이 18세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위대한 스승들이 산재해있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형암 이덕무, 초정 박제가, 담헌 홍대용
단 한 사람도 그냥 소홀히 지나갈 수 없는 우리의 스승들이다.
18세기는 참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보물 창고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