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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05. 2015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상실수업을 읽고서

뉴질랜드 이근택 목사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프린트된 A4 용지 수백 장이 LA 공항에 주차된 수백 대의 차 앞유리에 붙어 있었다. 

누군가 고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돌아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사연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짐작은 조금 할 수 있다. 

고국에 있는 어머니가 아프든지 돌아가셨든지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 불법체류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고국을 향해 떠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외치는 아픈 가슴을 누가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삶은 잔혹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는 상실, 죽음, 고통, 질병들이 수시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 모든 것을 어찌 다 막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가슴에 큰 상처로 묻어둘 뿐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아름다웠던 기억만큼이나 가슴은 저릴 것이다. 

그들을 사랑했던 그 따스함 만큼이나 가슴은 차갑게 시려 올 것이다.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의 몇백 배 몇천만 배 가슴 속에 큰 고통으로 남겨질 것이다. 

내가 내렸던 결정들, 내가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며 매일같이 아픔으로 남겨질 것이다. 

마음 놓고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표현도 못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삶이 후회스러울 것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부터 독방에서 살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친구처럼 여겼다. 

사람이 늘 그리웠고, 사람과의 만남이 늘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뜻 먼저 나서서 다정하게 인간관계를 가지지도 못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늘 나보고 차갑다고 말하였다.

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자꾸만 다가오고 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면서, 그동안 늘 친구처럼 생각해 왔던 죽음의 그림자가 내 곁에 바싹 다가선다.


뉴질랜드 여행 기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공동으로 집필한 “상실수업”을 읽고 묵상했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9년 동안 중풍을 앓아오면서 병실에 누워 마지막 유고작으로 남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녀는 상실과 아픔을 겪는 우리에게 이렇게 마지막으로 충고한다.

“슬픔의 힘은 희한하게도 슬픔을 치료하는 자체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은총이며, 슬픔의 기적이다.

그것이 곧 슬픔의 선물이다." 


나의 책 읽기

미쳐야 미친다.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권력과 인간

고독의 위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

조선의 일상사, 68년의 나날들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차이의 존중

철학자의 설득법

상실수업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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