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주인공 애신(김태리)을 가르치는 스승 장포수가 있다. 그는 조선 제일의 호랑이 명포수로 알려진 아버지를 따라 포수가 되었다. 그가 고종 황제를 지키는 경위원 총관이 되어 독립운동의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장포수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모르지만, 혹시 홍범도 장군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독립운동의 명장 홍범도는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로서 온갖 궂은일을 하다가 포수가 되었다. 홍범도는 북청일대에서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때 일제는 ‘총포와 화약류 단속법’을 시행하여 포수들의 총을 빼앗으려 했다. 이는 포수들이 독립운동으로 전향할까 두려워 사전조치를 취한 것인데 오히려 독이 되었다. 1907년 홍범도는 차도선과 함께 포수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1920년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하였다. 홍범도는 김좌진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 전투'에서 수백 명의 일본군을 섬멸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홍범도는 패배를 모르는 장군이었다. 당시 함경도 지방 주민은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 ‘축지법을 구사하는 신출귀몰한 명장’, ‘신장 9척의 천하무적 장수’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1937년 9월 소련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홍범도와 함께 연해주 일대 조선인 18만 명이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렸다. 가축을 수송하는 화차였기에 화장실도 없었고 나무판자로 된 벽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세차게 불어쳤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그들은 수없이 죽어갔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곳이 바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중앙아시아였다. 홍범도는 그곳에서 극장 수위를 하다 1943년 10월 25일 75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하던 조선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지 벌써 80년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과거에 그런 역사가 있었는지 까많게 잊고 살아간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되던 해였다. 세월의 감각을 알았으면 해서 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꺼냈다. 70년의 세월은 짧은 것 같지만, 절대 짧지 않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잊혀질 만한 시간인 70년 되던 해,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주거 이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강제로 끌려와 노예처럼 살던 이스라엘인에게 고레스 칙령은 해방 선언문이었다. 에스라는 감격에 차올라 이렇게 기록하였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에1:1-4)
에스라의 해석은 이러하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하신 사건이다. 고레스가 ‘하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하신 사건이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구하면,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언약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정확히 이 예언을 성취하셨다.
역시 하나님은 정확하신 하나님이시요,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때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하고 기뻐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우리의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않았지만, 광복의 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것처럼 그들도 소리높여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1,440 킬로미터를 걷는 그들은 피곤치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 땅에 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원대한 비전으로 가득하였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짓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유대의 혈통을 회복하고, 순수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들이 돌아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두 번째로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확립하였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모두 이혼을 강요하였다.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순수해야 한다.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 명단을 길게 발표하였다.(에10:18-44) 공개적으로 그들을 망신주기 위함이다. 그 후 유대인은 이방과 혼혈한 사마리아인들을 ‘개’라고 불렀다. 이러한 순혈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를 쓴 아서 글라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주도했던 개혁을 ‘하나님의 오른손’ 사역이라 치켜세웠다. 반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대인의 삶을 ‘하나님의 왼손’ 사역이라 하였다.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대 디아스포라 기록은 많지 않다. 에스라 느헤미야 뒤를 이어 에스더가 있다. 에스더는 에스라 느헤미야의 눈으로 보면 개보다 못한 여인이다.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이방 남자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바벨론의 정치체제에 도전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곳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정적 순간이 되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였다. 곁으로 보이는 순혈주의와 종교적 전통이 과연 중요할까?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순혈주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바벨론에 부역한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도 용납할 수 없고, 다윗의 가문에 당당히 들어온 룻도 용납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에스라의 개혁 파트너인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총독이었다.
세상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에게 순혈주의나 전통이라고 자랑하는 종교 형식과 의식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언어도 아니고, 혈통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신앙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도 없고, 제사장도 없었지만, 하나님 신앙만은 잃지 않았다. 바벨론에 흩어져 살던 유대 디아스포라는 민족적 편견을 깨트리고 이방인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로마인도 헬라인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후일 사도 바울이 선교하면서 아시아 전역에 흩어진 유대 디아스포라 공동체인 회당에 방문하였을 때 많은 이방인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경건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 사람과 달리 물질주의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려고 애를 썼다. 유대 디아스포라는 초대교회 훌륭한 선교거점이 되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돌아간 유대인은 종교의식과 전통에 사로잡혀 자기만 의로운 줄 아는 바리새인이 되었다. 제사제도는 썩었고, 권력에 아부하며 돈만 밝혀 성전 안에서 장사하였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순수한 의도로 개혁하였을지 몰라도 역사가 보여준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가 유대 디아스포라 사역을 ‘하나님의 왼손’이라고 한 것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뜨내기처럼 살아가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자기 정체성에 질문하고, 갈등하고, 확인하며 살아가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독일 태생의 미국 랍비인 레오 트렙(Leo Trepp, 1913-2010)은 바벨론 유대 공동체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바벨론에 사는 유대 공동체와 그 후손은 그들이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창의적인 참여를 통해 좋은 사회를 건설하게 하려는 뜻이 있다고 이해했다. 그들의 흩어짐은 죄악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적 도전 때문이었다.”
나는 기꺼이 유대 디아스포라를 ‘하나님의 왼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이라 부르겠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었다.
아모스 선지자는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아모스에게 있어 열방과 이스라엘로 나누는 민족적 편가름은 중요하지 않다. 고국에서 사느냐, 타국에서 사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 살던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서야 할 자리, 자기가 맡은 사명,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참고자료
1. 장세윤, '홍범도 - 저명한 서민출신 항일무장투쟁의 명장', 내일을 여는 역사 6, 2001년 9월호
2. 아서 글라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 임윤택 옮김 (생명의 말씀사 : 서울) 2016년
3.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에스라, 느헤미야', (국제제자훈련원 : 서울)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