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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1. 2018

하나님을 이기려는 자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국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의 첫 문장이다. 문장만 보면, 대한민국이 먼저 있고, 대한민국이 헌법을 선언하므로 비로소 민주공화국이 생겨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어순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한국민이 이 헌법을 통해 구성하는 민주공화국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1948년 헌법 제정 과정에서 ‘나라 이름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을 하였다. 제헌의회 속기록을 보면 망국과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이란 이름을 옹호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민주공화국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이 최선인지 고민한 흔적은 역력하다. 무엇보다 대(大)’자가 제국주의적 뉘앙스를 풍기므로 과연 나라 이름으로 합당한 지 고민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는 한결같이 국호에 ‘대’자를 붙였다. 대영제국, 대프랑스제국, 대독일제국, 대일본제국 등. 일부 의원은 ‘대’자 사용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대’자를 빼고 나면 한(韓)’이 남는데 한국이란 이름이 내포하는 영역이 조선이나 고려보다 협소하다는 지적이 다수였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정한 첫 세대는 공포와 무력감으로 가득한 일본 제국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가 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를 비롯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백성이 하나로 뭉쳐 나라를 이룬다는 뜻으로 ‘대한민국’으로 정하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폭력 아래 신음하던 백성이 세운 나라요, 힘없는 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결코 다른 나라나 민족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세운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 경제가 세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면서 서서히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강자의 논리가 점차 등장하면서 약자를 소외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전에 나라를 잃고 살 길을 찾아 전 세계에 난민으로 흩어졌던 뼈아픈 과거를 잊었다. 그 당시, 다른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을 받아주고, 포용해서 우리는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나라가 갈라져 전쟁 통에 죽어갈 때, 많은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다. 서방 선진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아시아의 태국과 필리핀, 남미의 콜롬비아 등 16개국이 생명을 걸고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 그런 우리나라가 이제 난민을 외면하고, 심지어 저주하기까지 하는 폭력성을 드러내니, ‘대’자가 가지는 제국주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국호를 살펴보았으니 ‘이스라엘’ 국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히브리어 동사 ‘사라’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이 결합한 형태이다. ‘사라’는 ‘주도하다, 이기다, 다스리다’를 뜻한다. BDB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뜻은 평서형과 기원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평서형은 ‘하나님이 주도하다, 하나님이 이기다. 하나님이 다스리다’이고 기원형은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하나님이 이기시기를,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이다. 이스라엘은 평서형과 기원형 모두 해석할 수 있지만, 성경의 맥락을 따지면, 기원형이 맞는듯하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창세기 32장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얍복강에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다.(창32:24) 여기서 주어는 ‘어떤 사람’으로 표현했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오셨다. 얍복강에서 한 야곱의 씨름을 기도로 해석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야곱이 하나님께 죽기를 각오하고 매달려 축복을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런 기복적 해석을 잘못이라 말할 수 없겠지만,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 싸움이 기도라면, 야곱이 하나님에게 싸움을 걸어야 하는데, 본문은 반대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었다.


하나님께서 싸움을 거신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긴 이야기를 한다. 일단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 보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싸움을 걸었는데 야곱은 독종이다. 지금까지 누구와 싸워도 져본 적이 없다. 형 에서와도 그렇고, 아버지 이삭에게도, 삼촌 라반에게도 손해 보고는 못사는 사람이고, 지고는 분해서 잠 못 자는 인간이다. 그는 목숨 걸고 싸우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그 고집스러움, 막무가내를 보시고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다.


엉치뼈 통증을 앓아보신 분은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야곱은 허리뼈 관절이 끊어졌는데도 악바리처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죽일 테면 죽여라!”

야곱은 그런 심정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목숨 걸고 덤벼드는 야곱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두 손 드셨다. 야곱을 지렁이 같다고 했는데 정말 징그러운 인간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묻는 행위다. 그러니까 이 싸움이 겉보기에는 야곱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양보하신 것이다. 그가 ‘야곱’이라고 하자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불러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과 싸워서도 이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해가 생겨났다. 이스라엘의 진짜 뜻은 ‘하나님이 이기다, 하나님이 다스리다, 하나님이 주도하다’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양보한 씨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28절 하반부에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였다. 그런데 씨름을 설명한 상황이 마치 '이스라엘'의 뜻으로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완벽히 거꾸로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준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너의 이름이 뭐냐?”

“야곱이니이다.”

야곱은 ‘ 발 뒤꿈치를 잡는 자, 뒤에 있는 자, 속여 넘기는 자’란 뜻이다. 즉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야 마는 자라는 뜻이다.

"너 지금까지 누구와 싸워도 이기고 살았지.

세상 모든 사람의 발목을 잡고, 뒤에서 음해하고, 속여 넘기고 밟으면서 살았지.

넌 이제 하나님마저 이기려 하는구나.

너 야곱으로 살지 말고 ‘이스라엘’로 살아라.

하나님이 너를 주도하고, 하나님이 너를 다스리고, 하나님이 너를 이기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란 주신 마음과 뜻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속이고 이기려 하는 자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므로, 삶을 바꾸라는 뜻으로 그에게 싸움을 거셨다.


'이스라엘'은 ‘나의 고집을 하나님께서 꺾으시고 이기시기를, 나의 계획과 발걸음을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를’이란 뜻이다. 나는 고집 세고, 나는 독종보다 더 악하고, 나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하여서 하나님마저 이기려 덤벼드는 자입니다. 나를 꺾으소서. 그런 기원을 담은 이름이다.


그런데 실제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하나님을 이기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 자기 뜻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기 생각과 계획을 우선시하였다. 하나님은 주권자가 아니라 돕는 자(helper)로, 보조 자(assistant)로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끝끝내 이겨 먹으려다 결국 패하고 망하는 이야기다. 나라 이름을 처음 지을 때 가졌던 초심과 순수한 마음을 잃으면 결국 망하는 법이다.


‘대한민국’을 처음 세웠던 사람은 결코 제국주의를 꿈꾸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말은 너무나 비슷하고, 너무나 잘못되는게 아닌가? 현재 대한민국 백성이 제국주의, 자기 중심주의,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힌 것처럼. 현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을 이겨 먹으려는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아닌가?


참고도서

1. 이국운,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김영사 : 서울) 2017년

2.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창세기', (국제제자훈련원 : 서울) 2011년

3. 게르하르트 폰 라트, '국제성서주석 창세기' (한국신학연구소 : 서울) 1988년

4. 월트 브루거만, '현대성서주석 창세기' (한국장로교출판사 : 서울) 2000년

5. 천사무엘,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창세기' (대한기독교서회 : 서울) 2012년

6. F Brown, S. Driver and C. Briggs, 'The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Hendrickson,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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