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Sep 18. 2018

사법농단과 신명기

우리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을 분립하고 있다. 입법부의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하여 뽑지만, 사법부만큼은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고 있다. 예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하였지만, 요즘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일정한 법조경력을 쌓은 후 판사나 검사로 임용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모두 도덕적이고 양심적일까? 머리가 똑똑한 사람은 정의로울까? 단지 공부 잘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삼권 중 하나인 사법권을 행사하는 게 합당한가? 


요즘 전직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으로 시끌벅적하다. 2018년 9월 17일 로스쿨 21개 소속 교수 75명과 법과대학 39개 소속 교수 62명은 전국 법학 교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년간 사법 농단 사태가 대한민국을 강타하였다. 처음엔 대법원에 밉보인 일부 법관을 특별 관리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었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할 법원에서, 그것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상고법원을 설립한다는 명분으로 권부의 핵심과 연결하여 재판을 거래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일은 우리 헌정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이렇게 법원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관의 양심을 팔아 권부와 거래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학생들에게 중요 판례로 가르쳐 온 강제징용사건,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 전교조, KTX 및 쌍용자동차 노동사건 등에서, 모두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하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헌법 파괴이자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이로 인해 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재판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 이 사태는 사법의 위기이자, 정의의 위기요, 국가의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에 심히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보다 훨씬 경미한 사건에선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국회의원들이 왜 이 사태에선 입을 다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하 생략)


머리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 중에 양심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사기꾼이나 범죄자도 많다. 미국 제헌의회는 불신을 기반으로 헌법을 제정하였다. 의회도 대통령도 믿을 수 없기에 철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법부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신뢰할만한가? 역사를 바꾼 재판 이야기를 읽어보면, 사법부의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았다. 사법부를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할까? 미국은 궁여지책으로 일반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 제도를 채택하였다. 그것도 정치적 오해를 살만한 재판이나 중범죄 사건으로 제한하여 실시한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신명기 법은 재판을 어떻게 하였을까? 크게 3가지 재판 형식이 있다. 첫 번째는 각 지역에서 행하는 성문 재판이며, 두 번째는 국가 행정 재판소(삼하15:1-6, 왕하8:1-6, 렘26:1-19, 호5:1)이고, 세 번째는 증인들의 증거가 엇갈려 해결할 수 없을 때 성소에서 하는 제의적 재판이다.(출22:7-10) 신명기 법은 두 명 혹은 세 명의 증인을 요구하였다.(신17:6, 19:15) 만약 증인의 증거에도 해결할 수 없으면, 예루살렘 중앙 재판소로 이송한다. 예루살렘 재판소는 제사장과 재판관이 논의한 후, 하위 기관에 다시 내려보내 판결하도록 한다.(신17:8이하) 사건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면, 성소에서 하는 제의적 재판으로 결론을 짓는다. 현대와 비슷한 삼심제도를 수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은 시행하였다.


국가 행정 재판이나 종교적 재판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삶과 밀접히 연관있는 성문 재판을 이야기하겠다. 흔히 성문 하면 우리는 경복궁의 대문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구약의 성문은 쓰임새가 현대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성문은 군사적 방어 수단이다. 성문을 통과하면, 성문 내부가 있는데 보통 두 칸에서 여섯 칸의 방을 가지고 있다. 출입로는 90˚로 꺾는 굽은 길이 하나 또는 그 이상 있었는데, 그것은 통상적으로 왼쪽으로 돌도록 건설하였다. 공격하는 군사의 옆구리가 방패로 가려지지 않는 쪽을 드러내려는 목적이었다.

성문 내부는 거대한 광장으로 이루어져 주민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장소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성문은 만남의 광장이다. 지도자의 공식 연설과,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선포가 있는 장소다. 도시처럼 요새를 갖춘 성문이 없는 촌락은 타작마당을 모임장소로 사용하였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은 사마리아 성문 곁에 있는 타작마당에서 선지자들에게 예언하도록 하였다. (왕상22:10)


사람이 많이 모이므로, 자연 상거래도 하고 세금도 거두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성문에서 거래하는 모습을 왕하 7장 1절에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왕하7:1) 예루살렘 성은 양의 문, 생선의 문이라 하여 거래 품목을 문 이름에 붙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성문은 재판하는 장소다.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은 언제나 공개적이었다. 재판관은 장로들이다. 처음에는 문중이나 지파 및 부족 사회의 어른이나 연장자가 장로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이라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지도력과 감화력이 있어 인격적 존경을 받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 장로는 어떤 외압과 청탁, 뇌물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과 원칙에 따라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재판이기에 판결 결과에 따라 그의 명예와 신뢰는 변할 수 있다.


절차는 이러하다. 억울한 일이 있는 사람은 성문에 와서 법적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성문에 서서 “정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면 정해진 수의 시민이 배심원 겸 재판관이 되어 고소 건을 다룬다. 공개적인 법정이기에 뇌물 공여나, 사건 조작이 감소한다. 혹시 재판장이 잘못 판결하면, 사람들은 ‘정의’를 외치며 소란을 일으킨다.


법과 제도를 아무리 갖추어도 사람이 부패하면, 재판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때 재판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성문에 등장하는 데 그가 바로 선지자다. 선지자는 집요하게 무너진 사회정의와 부패한 사법권을 비판하였다. 

이사야 -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사5:23)

에스겔 -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22:12)

아모스  -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암5:12)

미가 -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3:11)


이스라엘이 공의롭고 정의로운 나라인지 가름하는 척도는 성문에서 행하는 재판으로 결정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유 중 하나는 사법권의 타락이다. 아무리 삼심제도가 있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재판하여도, 재판관이 부정하고 타락하면 대책이 없다. 선지자의 피 끓는 외침은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암5:24, 새번역)


참고자료

1. 소형근, "고대 이스라엘 성문" 구약논단 18집 2005년

2. 장대규, "팔레스타인 철기 2시대(1,000~586 BCE) 도시 성문의 기능적 분석' 구약논단 24집, 2007년

3. 장대규, '고대 이스라엘 도시화에서 도시 성문의 기능 연구' 도시연구 2009년 6월, 도시사학회

4. 김태훈, '성문에서 공의를'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2001년 8월, 한국신학정보연구원

5. 롤랑 드보, '구약시대의 생활풍습', 이양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 서울) 1993년

6. 류모세, '열린다 성경 생활풍습 이야기 하' (두란노 : 서울) 2014년

7. 레이 프리츠, '성서 속의 물건들', 김창락, 김철홍, 박형대, 양재훈, 장성길 공역, (대한성서공회 : 서울) 2016년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 행복, 공적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