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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15. 2019

개인 행복, 공적 행복?

한나 아렌트의 공적 행복

전도사 시절 존경하는 장로님이 계셨다.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비서실장을 하셨던 임승혁 장로다. 당시 성업공사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임 장로는 찾아온 사람과 대화할 때마다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데 정말 행복하십니까?” 뜬금없이 하는 질문에 대부분 당황하였지만, 임 장로의 솔직 담백한 태도에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들은 나름 성공했다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난 행복하지 않습니다.” 임 장로는 그제야 그들에게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그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물론 임 장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임 장로는 정말 그들에게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진다. 이렇게 중요한 행복에 대하여 많은 사람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행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이데올로기와 정치 프로그램 대부분은 무엇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행복(幸福, happiness)이란 말은 영어나 한자어 모두 우연이란 뜻을 포함한다. 사전적으로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복으로서 삶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결코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이 시대는 행복에 대해 무지하고 나아가 잘못된 사이비 행복관이 판을 치고 있다. ‘행복’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약 만 이천권 이상의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행복에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바른 행복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자기 안전과 이익 그리고 사적인 행복에만 관심을 가진다. 


지금까지 많은 사상가는 행복을 사적 영역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사적 행복이 행복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공적 관심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결국 물질주의(자본주의,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이기적 개인만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녀는 ‘함께 하는 행복’이 ‘바로 나 자신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을 주장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사생활 속에 은거하고 가정과 출세 문제에만 헌신하는 태도는 사적 이해관계가 제일이라고 믿는 부르주아 계급의 타락한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타자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안녕만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고립과 외로움에 빠져 오히려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녀는 공적 영역에서 공적 자유를 가지고 공적 행복을 추구할 때 진정 행복한 삶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사적 행복이나 공적 행복은 자유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자유는 행복의 조건이자 본질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자유와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여 자유를 이야기하였다. 사적 영역은 자연권을 소유한 개인이 자기 소유권과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추구하는 장이며, 공적 영역은 개인의 행복을 더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하여 개인의 동의로 구성한 인위적 장에 불과하다. 공적 영역은 개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자칫 공적 영역이 확대되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체제가 되기 쉽다. 


정치철학자로서 미국 독립혁명에 참여하고 나중에 미국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John Adams, 1797~1801)는 혁명 운동 모임에 참가하면서, 모두가 평등하게 토의하고 숙고하고 결정하는 공적 행복을 경험하였다. 그는 공적 공간에서 모두가 느끼는 행복감은 연대를 확인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도덕적 의무를 완수하는 데서 온다고 하였다. 


존 애덤스는 말하였다. 

“남자나 여자나, 아이들이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높거나 낮거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무식하거나 박학하거나, 누구라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말을 들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인정하고, 존경할 것을 바라는 강한 욕망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철학을 가르친 호프 (O Höffe, 1943~) 교수는 행복한 세계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켜 공적 행복은 모든 시민이 공적 자유를 가지고 ‘순전히 함께함’(sheer together)으로 타인과 합의하여 공동체의 도덕성과 안전을 확보함으로 얻게 되는 정치 윤리적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유대인이면서도 공적 행복의 정신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민주정신을 회복함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은 그리스 남자 시민에게만 주어졌던 차별적 제도였다. 그리스 여자는 물론이고, 이방인은 원천적으로 참여가 차단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공적 행복의 정신은 오히려 구약 성경에 아주 풍부하게 나타난다. 


시편 저자는 노래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요.”(시 133:1) 여기 ‘형제’는 유대인만 말하는 것일까? 신명기 법은 말한다. “내가 그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신 1:16) 21세기 대한민국 헌법에도 보호를 받는 사람은 명백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정한다. 그런데 수천 년 전 성경의 법은 타국인도 형제로 대우하여 똑같이 대우하라고 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는 주민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공공장소로 성문이나 타작마당을 활용하였다(왕상 22:10, 대하 18:9, 32:6, 느 8:1,3,16). 이스라엘은 부족 연맹 체제로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땅을 분배받고 서로가 자치적으로 다스리는 정치 체제를 가졌다. 도시의 중요한 결정사항은 모두가 함께 모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토의하고 숙고하고 결정하였다. 


지도자가 백성을 다스리거나 판결하거나 설득할 때도 반드시 성문이나 타작마당에서 하였다. 비밀리에 지도자들끼리 모여서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 재판할 때도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고소와 변론을 하였고, 누구라도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만일 지도자가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지 않으면, 모인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항의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보다 수천 년 전부터 진정한 민주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만일 지도자가 법을 어기고 가난한 자와 약한 자와 타국인을 괴롭히면, 예언자들은 목숨을 걸고 공개 장소에서 지도자에게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었고, 제도였기에 지도자라고 해도 감히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백성을 억압하는 악한 지도자가 있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부터 주신 법은 공적 행복을 위하여 함께 참여하고, 모두가 평등한 가운데서 발언하고 토의하고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공동체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모두가 함께 행복하도록 하였다. 


현재 기독교는 개인 신앙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이기적인 신앙인을 양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공적 도덕성과 공적 안전과 공적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나 몰라라 외면하게 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서로 연대하고 사회적 참여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말하기 전부터 성경에서 가르치는 공적 행복을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다.


참고도서 

1.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 서울) 2016년

2. 소형근, ‘고대 이스라엘의 성문’ 구약 논단 18집 한국 구약학회, 2005년

3. 천명주, ‘한나 아렌트의 공적 행복과 도덕교육적 함의’ 윤리교육연구 34권, 한국 윤리교육학회, 2014년

4. 김우창, ‘행복의 이념’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 한국사회학회, 2009년

5. 홍경자, ‘사적 행복을 넘어 공적 행복으로’ 철학논집 제45집,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6년

6. 김선욱, ‘공적 행복의 해부’ 철학연구 87집, 철학연구회, 2009년

7. 이진남, ‘교양교육으로서의 철학적 행복론’ 사고와 표현 10(3), 한국사고와 표현학회, 2017년

8. 장대규, ‘고대 이스라엘 도시화에서 도시 성문의 기능 연구’ 도시연구 (1), 도시사학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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