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 설교 읽기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
로이드존스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라고 하였다. 유대인은 율법을 바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율법의 귀중함을 알았고, 율법의 요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유대인은 이방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건 바른 인식이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목사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자다. 사람이 율법 이외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흔히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누구라도,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원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매우 값이 싼)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거짓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율법에 다 설명하였다. 율법은 잠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모습을 설명하였고, 하나님 백성의 모습도 설명하였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상세히 보여준다. 예수님은 단언하였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율법과 은혜를 적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율법으로 우리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율법은 여전히 지켜야 한다.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능히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지, 율법 없이 제멋대로 사는 데 있지 않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니 이제 율법이 필요 없다고 외치는 도덕(율법) 폐기론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준을 낮추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이끌기 위하여 죽으셨다.
유대인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그들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유대인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한다고 확신하였다. 딱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 오늘날 일부 사람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함 받기를 원하고, 축복받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율법이 낸 숙제를 모두 마쳤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여자의 몸에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 아래 들어 오셨다. 예수님은 죄인이 회개의 표시로 받는 세례를 기꺼이 받으셨다. 자신을 우리와 똑같이 율법 아래 놓으셨다.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순종하였다. 율법의 어느 한 조항도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율법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죄를 범하면 형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를 대신하여 스스로 율법 아래 들어오셨고, 율법의 요구를 다 하셨고, 이제 율법의 형벌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마치셨다. 율법을 마쳤다는 말은 율법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을 완벽하게 만족시켰고, 완벽하게 순종하여 드렸다는 뜻이다.
이렇게 율법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세상에 누구도 율법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자가 없다. 율법의 요구를 마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행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율법을 온전히 마친 분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바울이 탄식하고 안타까워한 것은 자기 동족을 걱정해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저주 아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는 근심하였다. 차라리 자기가 저주를 받는다 할지라도 동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였다. 성경은 만인 구원설을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누구라도 다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려고 십자가를 진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사람이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입으로만 “나는 믿습니다” 말하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값싼 은혜, 엉터리 신앙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의를 이루기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우리는 이제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다. 우리는 용서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였다. 이점은 불변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그려주신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 심판과 정죄의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표현한 하나님의 율법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율법과 선지자와 사도)을 살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의 표현이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법 체계이고, 그 나라에서 살아갈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그려준다.
이글은 로이드존스의 로마서 강해 10권 제5장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을 요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