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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31. 2018

하나님의 큰 그림

창1: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물어보았습니다. 모두 어려워하시더군요. 한 길 사람 속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교회서 가르친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아마도 정답일 것입니다. 정답이 나와 있는데 이런 질문을 다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서 가르쳐 주는 정답 말고 나만의 대답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른들이 '우리 아기 최고'라고 칭찬해주는 소리를 듣지요. 옹알이만 해도, 몸을 뒤척이기만 해도, 엄마라고 말만 해도, 어렵게 한 발자국만 떼어도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이구나'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생각하지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키가 크고 생각이 커지면서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혹은 엑스트라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아폴로 7호선 우주 비행사였던 돈 아이셀 (Donn F. Eisele)은 말했습니다. 

“지구에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며, 사물을 평면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평면적으로 보는 한 평면적인 차이점만 자꾸 눈에 띈다. 지구 위 이곳저곳에서 살아보면 다른 나라는 역시 다르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풍토가 다르고 사는 사람도 다르다. 인종도, 민족도, 문화도 다르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생활 양식부터 음식, 먹는 법까지 모두 다르다. 어디를 가도 다른 것만 눈에 띈다.그러나 차이점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우주에서 보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차이이다.

지표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르다고 생각되는 것에 비해 우주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른 곳도 같다고 생각된다. 인간도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종족, 민족이 다를지 모르지만,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대립, 분쟁이란 모두 어떤 차이를 전제로 하므로 같은 것 사이에서는 싸움이 없을 것이다. 같다는 느낌이 부족하므로 싸움이 일어난다.“


얼마전 토성 탐사선 카시니가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늘 지구에서 우주를 바라보았는데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카시니가 먼 우주도 아닌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인 토성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의도하여 찍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찍은 것입니다. 지구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창조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첫 마디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인간이 얼마나 교만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눈에 띄지도 않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인 양, 모든 것을 자기의 작은 머리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비판하고 험담하고 소외하고 괴롭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가소롭겠습니다. 


저는 창세기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도 처음과 끝을 보면 거의 다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중요한 목적이 성경의 끝인 요한계시록에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새로운 “천지’(天地)이지요. 그리고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서 하나 된 하나님의 백성과 우주와 만물이 회복됨을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적 구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어떤 분은 댓글로 창조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지요.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니 좋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걸 완성이라고 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혼자 모든 것을 다 하셔도 완벽하실 터인데, 부족한 인간과 합작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가서야 하나님 나라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울까요? 저는 창조는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어요. ‘하나님 나라’ 관점의 성경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성경 읽기를 할 때 ‘하나님 나라’ 관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 나라’ 관점과 ‘나의 스토리’를 엮어서 대답하였는데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 나라’관점에서 읽고(이해하고), 미력하나마 내 삶(minor story)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큰 그림(grand story)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성경을 통해 살피는 게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니, 나의 성공을 위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이기적이고 기복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모습으로 변질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실상입니다.”(제가 댓글 내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큰 그림과 작은 이야기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림을 그리시고 인간은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요. 구체적인 상황과 내용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은 아주 유연하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끄셔서 그 큰 그림을 완성하시지요.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의 상황과 내적 갈등과 성품과 관계를 살피면서, 하나님의 진리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배우게 되지요. 저는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큰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큰 그림을 머릿속에 두고 야곱처럼 지렁이 같은 내가 오늘도 꿈틀거리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노래하지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편 8:4)

오늘 하루 이 찬양을 부르시며 하나님의 광대하신 그림을 한번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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