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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09. 2019

브리스길라 이야기 1

내가 처음 아굴라를 보았을 때 그는 로마의 장군 아퀼라스(Aguilas)의 유대인 노예였다.1) 그가 어떤 경로로 아퀼라스 장군의 노예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짐작건대 B.C. 64년 로마가 본도를 점령할 때 아굴라의 부모가 노예로 잡혀 왔을 것이다. 그는 비록 노예였지만, 비굴하거나 초라하지 않았다. 그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당당하였으며 자아 정체성이 분명한 청년이었다. 


처음 그가 로마 교회에 등록하였을 때부터 나는 그를 눈여겨보았다. 그는 신실하였고 겸손하였지만,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었다. 그는 내가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였다. 나는 로마의 명문 집안인 브리스가(Prisca) 출신이지만, 로마의 어느 귀족에게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2)


그가 신앙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인 아퀼라스가 죽으면서 그를 노예에서 해방하라고 유언하였다. 할렐루야. 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제 당당한 로마 시민이 되었다. 그의 천막 제작 기술은 꽤 쓸모있었다. 그는 부지런히 일하여 경제적 기반을 만들었다. 나는 점점 그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신분 차이는 있지만, 주님은 가르치시기를 종이나 자유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예수를 믿은 이후 부모님은 나를 포기하였다. 결혼하라고 늘 성화였지만, 신실한 신앙인을 만나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겠다는 나의 고집에 어머니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런 내가 아굴라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였을 때 부모님은 잠시 반대하였지만,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였다. 대신에 다시는 집안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세상의 명예와 권세보다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아굴라와의 신혼생활은 행복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막 만드는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아굴라와 함께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행복은 돈이나 신분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니다. 부부가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것이 행복이다. 아굴라와 나는 천막 사업은 부업이고, 하나님 일이 본업이라고 결정하였다. 놀랍게도 세상 욕심을 끊어버리고 나니 하나님께서 우리 사업에 기름을 부으셨다. 사업은 점점 성장하였고, 주를 위한 헌신도 날마다 커져갔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굴라를 만나 결혼한 것도 감사한 일이요, 아굴라와 함께 하나님 나라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요, 주를 위하여 헌신 할 기회와 여건을 허락하신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한 클라우디우스 황제였다. 그는 칼리굴라 황제가 암살된 틈을 타서 황제의 친위대를 매수하여 왕이 된 자이다. 그의 외모는 기괴하였고, 고개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다리는 가늘고 표정은 얼간이 같고 말까지 더듬어서 저능아처럼 보였다. 그의 황실 친척들은 그를 수치스러워하여 바깥출입을 금하거나 희롱하였다. 그는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유약하여 사회적 부적응과 소심함을 가지고 있었다.3) 


그러나 예상과 달리 클라우디우스는 13년 동안 통치하면서 훌륭한 정치를 펼쳐 로마를 안정시켰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마침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려는 유대인과 다른 민족과 긴장과 갈등이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원이 황제에게 올라왔다. 클라우디우스는 유대인의 종교적 권리는 인정하면서도 다른 민족의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를 자제하라고 명령하였다. 


문제는 로마였다. 로마에서도 유다인과 새로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과의 충돌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을 어기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이단이라 핍박하며 사회적 문제로 만들었다. 유대인들이 만들어내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은 클라우디우스는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4) 


추방 명령은 뜻밖이었다. 가정도 화목하고, 사업도 잘되고, 교회도 안정되어 가는데 추방은 벼락이었다. 모든 재산은 압수당하였다.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 나가라는 명령에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암담하였다. 그것은 마치 본토, 고향, 아비 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심정과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일까? 혹시나 행복에 취하여 사는 나에게 주는 벌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정든 부모와 떠나야 했고, 어렵게 일구어 놓은 사업과 집을 포기해야 했다. 사랑하는 교우들과도 헤어져야 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그때 생각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까지도 생겨났다. 단 한 번도 예배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은 적도 없었는데 어찌 이럴 수 있을까? 그래도 성실한 남편은 새로운 활로를 궁리하였다. 남편이 내린 결론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신흥 식민지(colonia)로서 성장하는 도시였다. 고린도는 여행과 물류의 이동이 잦은 항구 도시인데다, 2년마다 이스미아 경기 대회(Isthmian Games)가 개최되므로 그 어디보다 천막 수요가 많았다.5) 나는 고린도 지방의 우상숭배가 심하다는 소식에 주저하였지만, 남편의 결정을 믿고 따르기로 하였다. 


예상한대로 고린도에서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일군이 더 필요하여 천막장인을 모집하였다. 그때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다. (행18:1-3) 사실 사도 바울도 매우 낙심한 가운데 우리를 만났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에 의하면 아시아로 가서 선교할 비전을 가졌는데 하나님께서 유럽으로 가라고 하셔서 그리스로 건너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 지역의 선교는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므로 잠시 복음이 퍼지며 교회가 세워지나 했더니 극성스러운 유대인들의 집요한 박해 때문에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데살로니가, 아테네 등 가는 곳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믿음의 사람 바울도 연속된 실패에 절망하고 낙심하였다. 그때 우리가 만났다. 우린 실패자들이었고, 도망자들이었고, 떠돌이였다. 그런 우리가 만났으니 서로를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가보다. 


바울은 우리의 친구였고, 지도자였고, 스승이었다. 일 년 반 동안 바울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매일같이 들려주는 바울의 말씀은 나의 어리석고 둔한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주었다. 복음의 깊은 뜻,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소망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남편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주를 위한 헌신에 적극 동의하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발걸음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일 년 반 동안 바울이 인도하는 성경공부반에 최고의 학생은 누가 무어라 해도 나다. 바울은 여자인 나를 여자로 보기 보다 동역자로 보아주었다.(롬16:3)  하나님 나라 사역에 남녀의 구별이 없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기로 하였을 때 남편과 나도 바울과 동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세상과 땅에 대한 집착, 물질에 대해 집착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우리 발걸음을 어떻게 이끌어가실지에 대한 기대만 있을 뿐이다. 


1) 아굴라는 독수리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이름 아퀼라스(Aguilas)의 음역이다. 그가 이런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고대 로마 세계의 관습을 생각하면 쉽게 설명된다. 로마인 가문의 종이었던 사람이 후에 자유를 얻게 될 때 그는 주인의 이름을 따르게 되는데, 아굴라도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로마식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최승락,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그리스도 중심’ (그말씀 2016년 6월호, 두란노) 209쪽

2) Raymond F. Colins는 Robert Jewett을 따라 브리스가는 로마의 꽤 명망 있는 집안의 딸로 이해한다. (최승락, 2016)

3) 프리츠 M. 하이켈하임, ‘로마사’(현대지성사:서울) 1999년, 639쪽

4)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크리스튀스(Chrestus) 때문에 계속 소요가 일어나자 클라우디우스가 유다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크리스튀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로서 A.D. 50년 경 이미 로마에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다. (정태현, 성서입문, 한님성서연구소, 2015년, 432쪽) 

5) 최승락,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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