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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22. 2020

아비가일은 행복했을까?

아비가일은 지혜롭고 인자하며 믿음이 좋은 여자였다. 그러나 남편 나발의 처지에서 볼 때 아비가일은 결코 현숙한 여자는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구약학자로서 Bar-Ilan University 명예교수인 M. Garsiel(1936~)은 아비가일은 남자를 잘 아는 여자로서 남자를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였다. 그녀는 남편 나발과 다윗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Rhodes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Steven L. McKenzie(1953~)는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통치자 다윗의 품 아래 들어가려고 기회를 엿보는 여자로 평가하였다. 이스라엘의 많은 처녀가 다윗을 흠모했듯이 아비가일도 다윗을 사모하였다. 그녀는 현재의 남편 나발보다 훨씬 뛰어난 남자 다윗을 사모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따라서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남자를 선호하고, 장래성 있는 남자를 선호한다. 결혼 전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결혼한 여인의 이런 태도는 부정함으로 나가기 매우 쉽다.


조지아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B. Halpem은 나발의 죽음에 주요 용의자로 아비가일을 지목하였다. 그녀는 다윗에게 자기 남편 나발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다.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삼상 25:26). 그녀가 실제로 자기 남편의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핼펀 교수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Law and Narrative in the Bible” 저자인 C.M.Carmichael(1938~)은 아비가일은 남자를 조종하는 정도가 아니라 악녀라고 하였다. 그녀는 남편 나발을 살해한 주요 용의자로서 다른 남자 다윗을 사모하였고, 남편의 죽음에 어떤 애도 기간도 갖지 않고 바로 다윗에게 시집 갔다는 점에 주목하였다(유연희, 109).


아비가일을 향한 구약학자들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아비가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아비가일과 나발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과 함께 할 때는 매우 활발하였다. 그녀는 하인들을 잘 다루었고, 궁핍한 사람을 도왔으며, 남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였다. 그녀가 남편과 몇 년을 같이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남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남편을 잘 보좌하였다. 그녀가 나발과 함께 있을 때는 자기 생각과 주관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비록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럭저럭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남편 나발은 그런 아비가일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였다. 집안의 종과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모른척 눈감아 주었다. 그녀가 남편 몰래 다윗에게 가져다준 음식의 양은 엄청났다. 그 정도 양을 가져갈려면 여러명의 종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건 몰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삼상 25:18-19).


나발은 부인 아비가일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였고, 아비가일은 그걸 적극 활용하였다. 그런 면에서 나발과 결혼 생활이 불행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고, 상황 판단이 느린 나발을 어리석게 평가하며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우뚝 설 다윗을 흠모하였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무릎 꿇지 않았지만, 다윗 앞에서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어떻게 보았을까? 물론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를 사모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 다윗은 아비가일을 사랑하였을까? 나는 다윗의 여성 편력을 살펴보면서 그녀가 여자의 사랑에 연연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윗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략결혼을 하였다. 아히노암을 통해서는 이스르엘 지방과 결합하였고, 아비가일을 통해서는 유다의 갈렙 족속과 연대하였다. 다윗은 헤브론을 통치하는 기간 동안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싶어서 아비가일과 결혼하였다(Brueggemann, 275). 그런 면에서 다윗은 아비가일을 사랑했다기보다는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할 수 있다. 


그토록 사모했던 다윗과 결혼하였지만, 아비가일은 그 이후 성경에서 사라졌다. 나발과 함께 있을 때는 그토록 활발하고, 지혜롭게 말하던 여인이었는데, 다윗의 앞날을 예언할 만큼 영성 있는 여자였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다윗과 결혼한 이후 침묵하였다. 아비가일의 지혜로 보아 다윗이 늘 곁에 두고 조언을 구할 만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윗이 침묵을 강요했는지(아니면 그녀의 이야기를 가치 있게 듣지 않았는지), 혹은 성경 저자가 일부러 그녀의 말을 없애버렸는지 몰라도 더는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유연희 교수는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진정 속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하였다. 성경은 아비가일이 길르압(삼하 3:3)을 낳았다고만 기록하였지, 길르압이 다윗의 왕위 계승 경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다. 첫째 아들 암몬과 셋째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자연스레 둘째 아들 길르압이 되어야 하는 데 성경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고 넷째 아들 아도니야만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아비가일의 영향력은 미미하였고, 다윗도 아비가일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쩌면 다윗이 아비가일의 지혜는 높이 샀지만, 현숙하지 않음 때문에 멀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윗이 유부녀를 아내로 맞이한 경우는 아비가일과 밧세바가 있는데 이 둘을 대하는 다윗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능력 있고 비전 있는 남자를 사모하여 마침내 그 남자와 결혼하였지만, 아비가일과 다윗의 결혼 생활은 나발과 비교하면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Alice Bach 교수(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는 ‘다윗에게 아비가일은 단지 재산 많은 과부, 갈렙 족속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정략적 가치만 가진 여자였던 것 같다’고 평가하였다(유성희, 43). 아비가일은 현명하긴 하였지만 현숙하지 않았고, 꿈과 비전을 추구했지만 행복하진 못하였다.


(다음 편은 밧세바와 다윗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유연희, ‘아비가일의 남자들 : 삼상 25장 다시 읽기’, 구약 논단 제16권 1호 (통권 35집) 98-118, 2010년

Brueggemann Walter, ’ 사무엘 상하’, 한미 공동 주석 편집 번역위원회 편,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년

유성희, ‘다윗 주변의 여성들을 통해 본 신명기 역사가의 여성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 학과 석사 논문,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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