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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29. 2020

밧세바는 다윗을 유혹했을까?

밧세바 이야기는 종교화로 자주 그려지는 소재다. 그 내용은 매우 성적이기에 남성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쉽게도 대부분 화가는 밧세바가 의도적으로 다윗을 유혹한 것처럼 그렸다. 심지어 밧세바를 매춘부에 빗대어 그린 화가들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은 밧세바를 주제로 다섯 장을 그렸는데 모두 그 시대 매춘부 이미지를 덧씌워 그렸다. 동시대 화가 프란스 판 미에리스(Frans van Mieris, 1635-1681) 역시 밧세바를 매춘부로 재현하였다(김소희, 212-235). 이들은 모두 풍만한 여체로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자세로 그렸고, 매춘부의 소품을 등장시켰다. 개신교도인 렘브란트는 다른 각도에서 그렸는데 그는 밧세바의 고민과 고뇌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록 다른 화가들처럼 풍만한 여체를 그렸으나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절제하였고, 오히려 갈등하고 슬퍼하는 표정을 담는 데 힘을 썼다.


화가들이 성경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기에 그들의 그림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욱이 나는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주석가 중에서도 밧세바가 다윗을 유혹한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카일 델리취는 다윗이 밧세바를 궁전으로 데려올 때 간계나 폭력을 쓰지 않았고, 다윗의 요청에 밧세바가 주저하거나 반항하지 않았기에 밧세바에게도 죄가 있다고 하였다. 더욱이 남자가 볼 수 있는 환경에서 밧세바가 목욕한 것은 정숙하다 할 수 없다고 하였다(Delitzsch, 417). 스톨츠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는 것을 통해 남자를 유혹한 것은 의도가 있다고 하였다(Stolz, 397). 라임바하(K.A.Leimbach)는 “그녀가 목욕하면서 왕에게 보이려는 의도가 분명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밧세바가 다윗의 요구에 곧 응한 것과 그와 동침한 것에 대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이경숙, 249).


아마도 성서학자들의 이런 해석을 밧세바가 들으면, 너무 억울해서 통곡할 것 같다. 나는 성경을 살펴보면서 밧세바에게 다윗을 유혹하려는 의도가 1%도 없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

1. 밧세바가 목욕한 시간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삼하 11:2).

밧세바가 목욕한 시간은 저녁때이다. 밝은 대낮에 남자들이 보라고 목욕한 것이 아니다. 어두워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목욕했다는 것은 남의 시선을 피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결코, 어둠 속에서 몰래 훔쳐볼 남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 밧세바가 목욕한 이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삼하 11:4). 밧세바는 생리가 끝날 때쯤 시행하는 정결의식을 위해 몸을 씻었다(레 15:19-24). 레위기에 따르면, 생리 중인 여자는 부정하므로 생리가 끝난 후 7일째 되는 날 저녁 몸을 씻고 하나님께 비둘기를 바치는 정결의식을 하도록 하였다.


3. 능동적인 다윗

밧세바와의 사건에 사용된 동사는 다윗이 능동적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진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다윗이 보니…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더니… 보내어… 데려오게 하고… 동침하매(삼하 11:2-4). 이 모든 사건의 주체는 다윗이었다.


4. 나단 선지자의 판단(하나님의 판단)

만일 밧세바가 유혹한 것이거나, 다윗과 공모한 간통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다윗만 책망하였지, 밧세바는 전혀 꾸짖지 않았다. 밧세바가 낳은 아이의 죽음도 다윗 때문이라고 분명히 하였다(삼하 12:13-14).


5. 정황적 증거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때는 다윗이 많은 시련을 견뎌낸 후 신앙적으로 원숙한 중년일 때였다. 다윗이 30세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랐고 7년 6개월이 지난 뒤 남북 이스라엘을 통일하였다. 따라서 밧세바를 범할 때 다윗의 나이는 대략 40세가 넘은 중년이었다. 당시 평균 연령을 생각하면, 중년이 아니라 노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밧세바는 10대로 보인다. 그녀는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황적으로도 밧세바가 다윗을 유혹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다윗은 어스름한 저녁에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물었다. 신하는 대답하였다.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삼하 11:3) 신하가 반문했던 의도는 분명하다. 신앙 좋은 남자가 밤에 목욕하는 여자를 보았다면, 얼른 고개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저의는 무엇인가? 더욱이 그녀는 다윗의 참모 역할을 하는 아히도벨의 손녀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명인 엘리암의 딸이요 또한 우리아 장군의 아내다. 이런 명문 집안의 여인 밧세바를 데려와 범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후일 압살롬이 반역할 때 밧세바의 할아버지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섰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화가들은 다윗이 밧세바를 유혹하기 위하여 연애편지를 보낸 것처럼 그렸지만, 그건 다윗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화가들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부를 때 함께 동침하자는 뜻을 밝히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밧세바는 아무것(다윗의 강간의도, 다윗이 우리아를 살해할 의도)도 몰랐다. 밧세바는 왕의 부름에 거부할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왕의 부름에 당연히 나아가야 했다. 다만 성경은 밧세바가 왕이 성폭행을 시도할 때 반항했는지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았지만, 나단의 책망을 통해서 밧세바는 분명 거부했음을 알 수 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남성이 성폭행할 때 여성이 거부하지 않으면, 여성에게도 죄가 있으므로 처벌 대상이다. 만일 밧세바가 반항하지 않았다면, 나단 선지자는 반드시 밧세바도 징계하였을 것이다.


밧세바는 네 번의 폭력을 경험했다. 강간, 그 범인에 의한 남편의 죽음, 그 범인과의 결혼,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범인이 아니라 그녀가 낳은 첫 아이의 죽음이다(백원정, 162).


밧세바는 다윗의 정욕에 의해 희생당한 여자였고,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와 부부가 되어 살아야 했던 비극의 여인이었다. 권력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한 불행한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윗을 유혹하려고 목욕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을 동료 인간으로 보는 의식이 없는 차별적인 태도요, 여성 비하를 시도하는 남성 우월주의 시각이다.


(밧세바는 이런 불행을 딛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김소희, ‘밧세바 또는 매춘부? : 얀 스테인의 현대적 역사화’, 미술사와 시각 문화 24권 2019년 212-235

Keil and Delitzsch, ‘사무엘상하’ 최성도 옮김, 서울 : 기독교문화사, 1988년

F. Stolz, ‘국제성서주석, 사무엘상하’ 서울 : 한국신학성서연구소, 1991년

이경숙, ‘다윗을 유혹한(?) 밧세바’, 기독교사상 37(9), 1993. 9, 246-253

백원정, ‘여성신학적 시각으로 본 다윗의 여인들’, 한국여성신학,(41), 154-171,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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