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베리의 이슬람 선교신학' 서평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이 말씀을 문자로만 해석한다면, 거룩한 것과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나 개에게 주지 말라는 뜻이다. 일부 기독교는 이 말씀을 이방인이나 타 종교인을 받지 말아야 할 근거로 사용한다. 만일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선교가 자리할 곳은 없어진다. 왜냐하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모두가 이방인이요, 타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가장 적대 세력인 이슬람에서는 선교하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모슬렘은 어떤 경우에라도 다 배척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미 있는 책은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 의 ‘문명의 충돌’이다. 헌팅턴은 냉전 체제가 붕괴한 이후 국제 정치 질서가 이념 갈등에서 문명 갈등으로 대체된다고 보았다. 문명은 종교, 인종으로 닫힌 체제로서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명이나 중화 문명과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헌팅턴의 이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9.11 테러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과 대립의 구조로 보는 헌팅턴의 생각이 기독교 안에도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슬람 포비아 현상이다. 이들은 이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며 경계한다. 일부 기독교는 이슬람 포비아 전선의 제일 선두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이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전투적이다. 이슬람은 싸워 무찌르고 무릎 꿇려야 할 종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헌팅턴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독일의 하랄트 뮐러(Harald Müller, 1949~)는 ‘문명의 충돌’을 반박하기 위하여 ‘문명의 공존’이란 책을 썼다. 그는 문명 충돌론이 공산주의/소련이라는 거대한 적을 잃어버린 서구가 세계상과 방향을 제시하고 싶은 욕구에 이끌려 새로운 적 곧 이슬람을 부각해 서구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현대는 오히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공존 시대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슬람 국가에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아랍권 국가에 한류가 불고 있다. 미국만 해도 이제는 각종 문화와 문명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
하랄트 뮐러의 문명 공존론과 조금 다르지만, 더들리 우드베리(J.Dudley Woodberry, 1934~) 의 이슬람 선교신학은 갈등과 대결이 아닌 대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는 모슬렘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고, 외면하기보다 이해하며, 싸우기보다 포용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려는 이슬람 선교사요 학자다. 이번에 김일권 박사가 ‘우드베리의 선교신학’을 출간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의 이슬람 포비아에 경도되어 갈등과 싸움을 조장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화해와 평화와 사랑과 이해로 새로운 선교 동력을 불러일으켜 이슬람 선교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앞에서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 한번 개 돼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개와 돼지가 언제 진주와 거룩한 것을 달라고 한 적이 있나?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내게 좋은 것이라고 반드시 남들이 기쁘게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 아닐까?
예수님은 우리와 달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제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써 붙이고 전도하는 사람이 한국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고, 사명감에 불타서 하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는 불신자의 입장을 생각한 적이 있나? 그들의 문화, 그들의 생각, 그들의 관점은 무엇일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나?
상품을 팔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알아야 한다. 판매할 때 접근하는 방법도 배우고, 어떻게 물건을 제시해야 할지도 공부한다. 세상의 이익을 위해서도 사람들은 심리학을 배운다. 물건 좋다고 무조건 강매하는 어리석은 세일즈맨은 단 한 명도 없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그것은 마치 하늘 영광의 자리에서 마땅히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인간이 겪을 모든 아픔과 눈물과 갈등과 고민을 몸소 다 경험하신 성육신의 원리와 같다. 우드베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레이먼드 럴(Raymund Lull, 1232~1315)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때 즉, 기독교와 이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때, 그는 유일하고 참된 선교 방법은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네차례 북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1315년 80이 넘은 나이에 알제리 부기에서 복음을 전하다 결국 순교하였다.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처럼 모슬렘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그들 가운데 들어가 사랑의 복음을 나누었던 그는 우드베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드베리의 평화적 대화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케네스 크래그(Kenneth Cragg, 1913~2012) 교수는 이런 말을 하였다. “모슬렘 선교의 목적은 십자군들이 믿은 대로 기독교 세계가 잃어버린 것을 탈환하는 것이 아니라, 모슬렘이 잃어버린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 모슬렘은 초대 교회의 핵심 멤버들이었다. 바울이 썼던 편지와 사도 요한이 썼던 편지 대부분은 지금의 이슬람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이다. 이슬람이 나오기까지 무려 600년 동안 그들은 크리스천이었다. 십자군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땅을 빼앗으려는 것보다 반대로 그들이 잃어버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찾아 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이슬람 선교의 사명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모슬렘 선교는 무슬림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말은 모슬렘이 믿는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김일권 박사는 제3장 우드베리의 이슬람 개론 이해와 제4장 우드베리의 이슬람 선교 연구를 통해서 이부분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이슬람을 믿는 모슬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되었다면, 그다음은 복음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슬리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슬릴 수 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과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셨다. 아무런 전략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개 돼지에게 진주와 거룩한 것을 던지는 것과 같다. 그것은 복음을 함부로 취급하는 행위이며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과 공격을 자초하는 일이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세력이 많다. 포스트모더니즘, 세속주의, 물질주의, 성 소수자들, 진화론자들, 불신자들. 이슬람이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는 안티 기독교가 너무나 많다. 초대 교회의 형편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 복음을 전파할 때, 지혜가 필요하다. 우드베리의 은사였던 크래그 교수는 “선교에 있어 태도(manner)가 바로 메시지다”라고 하였다.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도 있고, 그 반대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진리의 어떤 특정 면이 적절한가를 배워야 한다. 이슬람은 기독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적대하는 세력이다. 섣부르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던지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우리를 찢어 상하게 할 것이다. 우드베리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어떤 교리를 제시해야 할지, 그리고 피해야 할지를 말한다. 기독교 교리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 진리는 매우 다양하고 풍만하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젖과 같이 부드러운 초보의 도가 있는가 하면 딱딱하고 굳은 음식이 있다. 기초를 닦을 때 이슬람이 가장 싫어하는 교리로 접근한다면, 그는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이슬람이 이해하기 쉬운 진리부터 전달하는 것이 지혜롭고 효과적이다.
하나님의 선교 방법은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죄인의 친구로 보내주셨고, 죄인의 모든 사정과 고통을 다 헤아리게 하셨고,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신 후 하나님 나라의 도를 전달하셨다. 예수님은 몸으로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시고 몸으로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진리를 부여받은 자이다. 우리도 동일한 원리와 방법으로 이슬람과 타 종교인과 안티 기독교를 대하며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데이비드 쉥크(David Shenk,1966~) 교수는 우드베리 부부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였다. “만약 우리가 무슬림과 평화 가운데 함께 살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는 무슬림에게 예수를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더들리 우드베리와 그의 부인 로베르타의 유산이다. 그들은 무슬림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증거 하며 살기 위해 헌신한 부부였다.”
김일권 박사의 “우드베리의 이슬람 선교신학”은 이슬람만을 위한 선교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의 대표자인 이슬람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접근하여 인격적 관계를 맺고 복음을 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므로서 선교 동력을 일어버린 현대 교회에 귀한 교훈이 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슬람 선교사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읽어야 할 책이다.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현대인, 그리고 갈등과 반목과 싸움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나누었던 예수의 정신을 본받는 그리스도인이 요구된다.
김일권 선교사가 이 책 뒷부분에 당부했던 말, 우드베리의 저서들이 한국 기독교에 더 많이 소개되고, 경계와 충돌과 싸움이 아닌 공존과 화해를 실천하는 한국 기독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